제목: 대가가 낙담하지 않았던 실패 (시 31:11-14)
이탈리아의 가극 작곡가 로씨니는 늦게야 볼로냐 음악원에서 배운 후, ?가극 제 1 작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고, 이어서 음악 비극 <땅끄레디>를 ?베네찌아에서 발표함으로써 일약 그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되었다. 나폴리
극장의 지배인 바르바야는 이런 로씨니를 인정하여, 1년에 1만5천 프랑의 ?보수로써 매년 2개의 가극을 작곡해 주면 된다는 계약도 하게 되었다. ?로씨니의 길은 열리는 듯 했고, 그의 악풍은 점차 향상하여, 그는 걸작 ?<세빌리아의 이발사> 를 1816년 2월 5일 발표했다. 그러나 작품은 초연에 ?있어서 볼만하게 실패했다. 그 실패에는 음악 역사상 유명한 삽화가 있다. ?그의 선배인 빠이지엘로도 꼭 같은 제재로 이미 가극을 써서 성공을 거둔
바 있었다. 빠이지엘로가 그때 생존해 있었음으로 로씨니는, 같은 이름을 ?쓰는데 대하여 이 선배에게 인사와 양해로써 작곡했던 것이다. 그러나 ?빠이지엘로 일파는 로찌니의 실패를 계획하여, 이탈리아에서 휘파람 잘 ?부는 자들을 극장으로 몰아 넣었다. 갈치아로 분장한 연기자가 로지나의 ?로대 아래서 키타를 하면서 노래하려 했을 때는 키타의 줄이 틀렸으므로 ?다시 맞추지 않으면 안되었고, 또한 노래 하려할 때는, 줄이 끊어져 다시 ?줄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었다. 극중의 명곡인 <라르고>를 노래
할 때는 휘파람과 웃음 소리로 뒤에까지 들리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고양이가 뛰어 나와, 그 당시의 관습대로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하고 있던 ?로씨니는, 손을 멈추고서 고양이를 좇아다니는 추태를 보이기까지 했던것 ?이다. 그러므로 제 2 막부터는 대부분의 청중은 나가 버렸다. 이같이 ?실패하였음으로 출연자들은 로씨니의 숙소를 찾아가 위로하려 했는데, ?가보니 낙천적인 로씨니는 태연하게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가는 한번 실패에 절망 낙담하는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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