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에게 찾아온 크리스마스

  조회수 : 827    / 등록일 : 2006-11-27   / 출처(저자) : 낮은울타리


선인장에게 찾아온 크리스마스

나를 식물에 비유한다면 아마 선인장이 딱일 거예요. 사막에 있는 데다 가시 때문에 접근하기 힘든 식물이잖아요. 어려서부터 나도 그랬거든요.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주기 바랬지, 정작 나는 말 한 마디 걸지 못하고 주로 혼자 지내는 그런 아이였죠. 다른 사람들과 말하고 관계 맺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던지…. 사람들도 그런 내게 말 거는 걸 좋아하지 않는 듯했어요.
이십 대가 돼서도 여전히 이런 것들에 골몰해하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웠던 내게 연기자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악역이 맡겨졌어요.
지금까지 와는 다른 눈빛과 말투와 행동을 연기해야 했기에 더 많은 변화의 노력과 집중이 필요했지만, 난 그 변화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나면 내게 특별한 무언가가 주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온 힘을 쏟아 그 연기를 했어요. 마침내 그 드라마가 끝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내게 아무것도 주어진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왜 이리 공허하고 허탈한 걸까? 난 외롭고 허탈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
스타가 되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살면, 이전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 공허함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 생각이 극에 달해 자동차를 타고 가던 어떤 날은 자살충동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발견한 짧은 문구 하나에, 악역을 맡아도 변하지 않던 내 삶이 송두리째 변화고 말았지요.
“나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순간 수도꼭지를 튼 듯 펑펑펑 눈물이 쏟아졌어요. 처음으로 기도라는 걸 하면서 날 구해 달라고 소리쳤어요.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럽기보다 자유롭다고 느껴지는 거 있죠. 그 해 크리스마스가 내겐 얼마나 특별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아기 예수를 만났고 그분이 왜 태어나셨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자 내가 왜 태어난 목적까지 알게 되더군요. 난 ‘이유없이’ 또는 공허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었던 거예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느꼈던 행복한 시간. 나의 목적과 가치를 알게 해 준 시간이었죠. 아마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맞을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난 지금 세 살이에요. 벌써 세 번째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네요.
이번 크리스마스 땐 뭐할 거냐구요. 글쎄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아마 누군가를 주기 위해 선물을 포장하고 있을 거 같아요. 이제 유리는 남에게 용기 있게 먼저 다가 설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사람이거든요.

⊙ 이유리는 연기자로, 드라마 ‘학교4’로서 데뷔한 후 ‘명성왕후’, ‘노란손수건’, ‘부모님 전상서’ 사랑과 야망’등의 굵직굵한 드라마에 출현해 좋은 연기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