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수는 병든 아버지와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어머니를 모시고 경북 상주군 사산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학교를 마치면 마을의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잔심부름을 해서 아버지의 약값을 보태려고 애썼다. 이런 재수의 정성 덕에 아버지는 건강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버지가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30리나 떨어진 큰집으로 떠나게 되었다.
재수는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위해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다. 때마침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 온힘을 다해서 길을 가시던 아버지는 그만 세 번째 고개를 넘던 중에 발을 헛디뎌서 쓰러져서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 못해 재수는 "사람 살려요!"라고 외쳤다
그러나 재수의 외침은 칼날 같은 바람소리에 묻힐 뿐이었다.
점점 차가워지는 아버지의 몸이 얼어붙을 것을 염려한 재수는 웃옷을 벗어 아버지께 덮어 드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해서 내의마저 벗어 덮어드렸다.
깜깜한 밤인데다가 눈이 쌓여서 길조차 분간할 수 없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재수의 몸도 점점 식어 갔고, 애꿎은 눈은 이불이라도 되는 듯 재수와 아버지의 몸을 덮어갔다.
마을사람들이 재수 부자를 발견했을 때, 재수의 벌거벗은 몸은 아버지의 커다란 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이때 재수의 나이 고작 9살,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뒷날 재수의 모교 운동장에는 이런 효자탑이 세워졌다.
험한 산 깊은 속에 향기롭게 핀 한 송이 꽃
그윽한 향기 온 누리에 풍긴다
길이 빛난다
어린 나이로 아버지를 위하여
뜨거운 효성의 불을 피워서 불살라 버린
갸륵한 꽃송이
효자 정재수가 다니던 상주의 사산초등학교는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폐교자리에는
「효자 정재수 기념관」이 건립되어 현대사회에서 잊혀져 가는 효사상을 정립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효를 가르치는 산 교육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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