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조회수 : 1381    / 등록일 : 2009-02-09   / 출처(저자) :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우리나라 한해 경마, 경룬, 카지노, 복권 연간 이용자수가 2003년 현재 2000만 명을 넘어섰고, 매출액도 12조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회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퍼져 있는 불법 도박장까지 감안하면, 국내 도박 산업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도박 중독자로 분류되는 성인만도, 전체의 10%에 육박한다고 하니 가슴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들 삶이 빡빡하고, 한탕주의 말고는 삶의 어려움을 되돌릴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 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동화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대박 찬스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인생의 좋은 기회를 잡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왕실과 막강한 권력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엘리사는 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한 귀족 집안의 여인이라고 하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이 없겠습니까?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없겠습니까? 아마도 이 기회를 통해 원한을 풀거나, 더욱 많은 축복을 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이 그토록 염원했지만 얻을 수 없었던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요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궁중에 있는 왕에게나 권력을 가진 군대 장관에게 그리고 엘리사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엘리사의 호의를 완곡하게 사양하는 그녀의 이 대답은 오늘도 대박을 꿈을 꾸며,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하여 엘리사의 호의를 거절합니까?
오늘 우리는 이 여인이 자신에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를 포기하는 이유 속에서 여인의 신앙이 어떠한 것인지 또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신앙과 선행을 이익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엘리사의 호의를 거절한 것은 무엇보다 자신이 엘리사를 대접한 것은 무슨 보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봉사였음을 분명히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진실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기적인 목적이나 공로주의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종을 잘 공궤함으로 하나님을 공궤한다는 신앙적 열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성도들은 이런 순수한 신앙적 열심보다는 하나님께 축복받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를 하고, 교역자를 공궤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물론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의 구절처럼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의 필요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지나치게 치중하여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선행이 우리의 사적인 이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실제로 신앙과 선행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한 방법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싱앙과 선행, 공로주의에 근거한 신앙과 선행은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봉사하며, 섬기는 신앙적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으로 엘리사를 섬기고자 했기에 기꺼이 그것을 이익이나, 자신의 욕심과 연결하기를 거부하고 잇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에게 이런 순수한 신앙과 사랑이 있습니까? 여전히 어렵게 살지라도, 축복하지 않으실 지라도, 풀무불에서 그냥 죽을 지라도 하나님을 여전히 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까? 이런 순수한 신앙,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삶을 하나님의 백성됨으로 감내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선지자가 준 기회를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삶이 부족함 없이 완벽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의 사회에서 여인으로서 가장 결정적인 흠이라 할 수 있는 해산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선지자를 섬기는 신앙을 가진 여인이 어찌 자녀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할 수 없엇겠습니까? 설사 믿음이 전혀 없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는 말의 원문 그대로의 해석은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여인은 삶의 빈자리를 하나님의 백성됨으로 채우는 신앙인이었떤 것입니다. 미친 듯이 채우고 가져오고 쟁취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채우고 가져오고 쟁취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됨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됨이 삶의 부족함을 채우는 위로와 만족함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부담되는 이야기 인지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다. 하나님의 백성됨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삶의 부족함을 능히 채우고도 남을 만한 것입니다.

3. 주어진 오늘을 충실하게 열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라는 대답의 한 측면은 그녀가 특별한 대박의 한 날을 기다리며 살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충성스럽게 살아온 이면을 보여줍니다. 즉, 그녀는 백성 중에 살아가는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중요할 뿐 특별한 기적이나 이적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들에게는 기적처럼 찾아오는 대박의 날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한 10여 년 전에 시한부 종말론으로 한국 기독교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믿은 많은 사람들은 주님이 오신다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극단적이고 맹신적 신앙생활로 주어진 삶을 내팰개쳤을 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들은 오늘을 버려서 내일을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날 꼭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날 꼭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누구를 더 칭찬하시겠습니까? 오시는 그 날까지 하루하루 맡겨진 일 잘 감당하는 대부분의 신자들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오늘을 버려서 내일을 사는 종교가 아니라 오늘을 사서 내일을 얻는 종교입니다. 즉 기독교는 주어진 오늘이라는 삶을 가장 충성스럽게, 가장 충실하게 보내게 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내일의 대박을 바라는 소망이 아니라, 오늘을 충실하게 하는 능력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끝맺는 말 : 오늘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러분을 방문하여 대통령에게 부탁할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거환경을 바꿔 달라거나, 그린벨트를 풀어달라거나 혹은 세금을 줄여달라거나 계획하고 있는 개발 계획을 몰래 알려달라거나 하는 부탁들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이 여인처럼 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나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여인의 모습처럼 순수한 신앙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주어진 날들을 충실히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