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의 성도들이 장래 소망의 찬송가로 많이 부르는 찬송가인데 장례 때 가끔 불리운다고 해서 아예 장례부류의 찬송으로 귀속시켜 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다른 기회에는 잘 불려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찬송가는 작시자 작곡자가 모두 불명인데 영어 제목이 너무 흔한 제목이라서 그 제목으로는 작시 작곡자들을 가려낼 길이 없을 것 같다.
1절 인생길을 다 달리고 인생의 석양에 이르러 이제 머지않아 가게 될 본향을 그리며 옳은 것이다. 인생의 여정은 매우 짧다. 시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마치 달리는 기차 창밖의 전주가 지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주인이 보내신 세상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돌을 줏어 내며 비료를 주고 열시히 수고하노라면 어둠이 우리 앞에 깔릴 때 주인이 오셔서 수고했다고 칭찬하시며 우리를 데리고 주인의 집으로 가신다. 이제 땅 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주인께서 오셔서 수고를 그치고 가자고 재촉하신다는 것이다.
2절 폭양이 내려 쪼이는 여름날이나 비바람이 부는 날, 때로는 눈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논밭에 나가 일해야 할 때가 있다. 기쁠 때도 있으나 슬프고 괴루울 때도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주인이 오셔서 그만 수고하고 가자고 하시며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 세상밭에서 일하던 흙 묻은 옷을 벗기시고 목욕을 하게 하고 주인의 방에서 만찬상에 둘러 앉아 기쁘고 즐겁게 사랑의 잔치를 가질 것이니 세상에서 고통스러웠던 수고는 가신 듯이 잊을 것이다. 거기서 성도들과 사랑의 구주를 길이 찬양한다는 것이다.
3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밭에 보내신 것은 관광여행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이다. 우리들 각자에게 맡겨 주신 일이 따로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달란트 비유는 많이 받고 적게 받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했는가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날이 화창하고 밝을 때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다 보내고 날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고 내 힘이 빠져 지쳐 있을 때 주의 일을 하지 못한 거을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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