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설교자들이 그들의 설교를 오래 간직하게 하기 위하여 설교 내용을 요약한 찬송시를 써서는 잘 알려져서 쉽게 부를 수 있는 고고가 결합시켜 부르곤 했는데 이 찬송가가 필경 그런 류의 찬송으로서 다분히 초대 우리 한국인이 작시한 찬송가인 것 같다. 초대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촬스 웨슬레의 찬송 "만 입이 내게 있으면"의 유명한 찬송가를 많이 불러서 그 찬송곡 AZMON곡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그러하여 그 곡에 또 하나의 찬송이 결합되어 잘 불리우게 되자 정식으로 찬송가에 실린 듯하다.
1절 주의 일에서 얻어지는 기쁨과 즐거움을 사모하고 있고 그런 기쁨을 누리며 세상을 살다가 주님 앞에 가는 더 큰 기쁨을 얻겠다는 것이다.
2절 세상의 것은 모두 "헛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간혹 우리는 세상일에 도취되어 진정 중요시 할 일을 소홀히하여 엄청난 기회를 놓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신앙 좋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노후를 의탁할 곳이 없었다. 그 할머니는 먼 친척을 찾아가 자신을 탕아 달라고 하였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내 비록 나이는 많지만 여러분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개 죽음이 아름답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 드렸고 주님은 나에게 확신을 주셨읍니다"라고 했으나,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신혼부부가 이 할머니의 간증을 듣고 맘이 뜨거워져서 어머니처럼 모시기로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다른 날처럼 찬송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기척이 없어서 젊은 부부가 방에 들어가보니 주무시듯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편지 한장을 발견했는데 유서였다. "아무도 나를 맞아 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나를 믿어 주고 내가 믿는 예수를 믿어 주었으면 나의 신앙과 기도를 믿어 주어서 함게 살아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유산을 남기니 하나님의 사업에 써주십시오"라는 글귀와 함께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3절 우리에게 시험이 있어도 주께서 승리할 힘을 주시고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피할 길을 주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겁내랴. 순금과 정금은 불을 통과해야만 얻어진다.
4절 정금의 가치는 그를 단련시킨 온도의 높이에 비례한다.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의 순수성은 그를 단련시킨 시련의 크기에 달려 있는데 이 믿음은 정금보다 더 귀하다고 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금이라 해도 견디는 온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참다운 믿음은 죽어 순교하는 한이 있어도 결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5절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니 촌음을 허비하지 말고 아껴서 주 위해 일하자는 것이다. 이 내용이 초대 한국 교회 부흥 전도집회 때 많이 사용되었던 말들이라는 것으로 보아 이 복을 성가의 출처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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