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 히브리 민족만큼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민족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시조가 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고 동행하사 그들에게 필요한 각별한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역사과정을 통해서 히브리 민족 전체를 향한 당신의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끊임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과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 사건과 관련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흉년을 당하여 멸절의 위기에 있던 야곱의 가족을 풍요의 땅 애굽으로 이주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자를 기준으로 70여명에 불과하던 그들을 4백년만에 60만명의 장정을 갖는 큰 민족으로 키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애굽 땅에서 고통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출애굽을 거부하는 애굽 왕 바로를 너무나 놀라운 열 재앙으로 굴복시키심으로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출애굽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후에도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였으나 그들을 좇아오던 애굽의 군대는 몰살케 하였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굶주린 이들을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왠일입니까? 본문에서 확인되듯이 이렇게 큰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부족할 그들이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와 다투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과 다투는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로 규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7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자신들 중에 계신가 아닌가를 의심하여 취한 패역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보자면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끊임없는 시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험은 광야 40년간의 방황을 하게 했으며 끝내는 20세 이상의 장정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을 초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출애굽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교훈을 받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원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험은 원망으로 시작됩니다. 원말은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망각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이고,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타난 므리바의 물 사건에서도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애굽에 내린 하나님의 열가지 재앙을 목도하였고 또한 갈라진 홍해를 친히 건넌 자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곤경 앞에서 이 모든 것을 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발하였던 날도 그들은 여전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보호아래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물론 지금 베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앞으로 베풀어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들을 보호하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무지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과오를 흔히 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존재임을 망각하기 일쑤입니다. 자신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합니다. 자신의 시선을 현재의 곤경에만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원망을 싹틔웁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를 시험한 과거 이스라엘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이러한 중대한 범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2. 배반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배반으로 발전합니다. 출애굽 후 광야 여정에서도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배반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한 가지 실례만 살펴봅시다. 먼저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이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한 후에 배반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반역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볻을 주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하였습니다(민 14:1-10). 이와 같은 배반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모세의 중보 기도로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기는 하였으나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시험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과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배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인간의 일을 생각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일까지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런 점에서 자유합니까?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러한 죄악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싣기를 바랍니다.
3. 멸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험이 계속되면 이는 멸망으로 귀결됩니다. 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민 14:22,2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 그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애굽을 나왔던 20세 이상의 장정들은 모두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절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의 멸망에 대한 보다 극적인 사건으로는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 일당의 반역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세의 영적지도자 아론의 제사장직 등 이스라엘 선민 국가의 정권을 탈취하려 하였던 고라 일당이 땅에 삼킨 바 되고 여호와의 불에 의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앞선 경우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점진적 멸망의 심판이었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즉각적 멸망의 심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는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악한 자들을 멸망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였을 때 결국 멸망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미혹하는 영을 좇아 진리에 대적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면 이러한 심판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시험하여 원망하며 배반하는 자들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부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끝맺는 말 : 성도의 가장 큰 미덕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그러한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인간의 가장 큰 악덕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은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고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 거지살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의 결과는 다 큰 불행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멸망에 이를 시험을 계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눈을 돌려 감사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 아니라 현실이 비록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그 길로 걸어갑시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