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 : `위기`라는 뜻의 영어 `크라이시스(crisis)`는 그리스어에서 `나누다, 선을 긋다`라는 의미를 지닌 `크리네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이는 뚜렷한 획을 긋는 전환점, 분기점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crisis를 `turning point for better or worse` 즉 `좋아지거나 혹은 나빠지게 되는 갈림길`이라고 해석해 놓고 있습니다. 한편 위기는 한자로 `危機`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이 단어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반영해 줍니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기를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위기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나빠질 수도 있는 위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아질 수도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 찾아오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만드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 절망하고 범죄하고 낙심한다면 그것은 더 큰 위기와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시기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그 위기를 인생에 다시없는 귀한 기회로 만들어 가야겠습니다. 고난의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승화시켜 나가야 되는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을 체험의 기회로 삼으라.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기독교의 정수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언제 하나님께 목놓아 부르짖게 됩니까? 평탄할 때가 아닌 고난의 날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내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기회요, 기도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기회입니다.
다윗의 주옥같은 체험적 신앙시들은 그가 왕으로서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릴 때 나온 것이 아니라, 사울에게 쫓겨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중에 있을 때 나왔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체험적 신앙`으로 소문날 수 있었던 것도, 일제 치하와 6.25 동란이라는 엄청난 고난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 중에 피맺히게 부르짖어 기도했으며 주님 앞에 고귀한 순교의 피를 아낌없이 흘린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부흥되고 교회를 인하여 경제도 부흥되는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한국 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에게 닥친 고난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천금같은 기회로 만드시길 바랍니다.
2. 고난을 성숙의 기회로 삼으라.
비엔나의 어느 유명한 성악교수가 천재성을 지닌 장래가 촉망되는 수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너의 목소리는 하늘이 내린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너의 생애가 지금까지 너에게 너무 친절했다는 것이다. 언젠가 가슴 아픈 고통까지 경험하게 된다면, 너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악가가 될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형통이 아니라, 고난입니다. 본절의 67절과 71절에서 시편 저자도 고난을 받기 전과 고난을 받는 후가 다름을 증언합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나면 생각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고난을 당하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이 몰라보게 성숙해지고, 인격이 놀랍도록 성화됩니다. 외적인 것은 잃었을지라도, 내적인 것은 깊은 변화와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치 무더운 여름철에는 나무가 위로 자라고 옆으로 뻗어 나가지만, 찬 바람 부는 겨울이 오면 나무는 속을 채우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괴테는 "고난은 참된 인간을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과정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 있습니까? 바로 이 때야 말로 내가 성숙해 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줄 알고, 그 기회를 잘 선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3. 고난을 훈련의 기회로 삼으라.
칼 힐티는 "고난은 사람을 강하게 하나 환락은 약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시련을 통해 훈련된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경과 환란을 능히 견디어 냅니다. 세상의 웬만한 어려움이나 유혹쯤은 거뜬히 이겨내며,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됩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새끼를 움켜쥐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땅으로 떨어 뜨려 버립니다. 새끼는 떨어지면서 필사적으로 날개를 파닥거립니다. 땅에 떨어질 쯤이면 다시 채다가 높이 올라가서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새끼는 날개에 힘줄이 뻗고 근육이 생기면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께 되는 것입니다. 태풍 속에서도 그 강인한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공중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이처럼 훈련하십니다. 참새에게는 그런 훈련이 필요 없지만 독수리에게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듯,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모진훈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 속에 고난이 있습니까? 이 날을 하나님 앞에서 강하게 훈련받는 둘도 없이 좋은 기회로 삼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끝맺는 말 : 빅터 프랭클은 그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체험을 통해,「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수용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관찰해 본 결과, "수용소의 힘들고 처참한 환경에서도 잘 견디어 나간 사람들은 외적인 조건과 배경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똑같이 위기의 갈림길 앞에 섰어도, 어떤 사람은 실패의 길로 가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공의 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삶 속에 고난의 위기가 찾아 올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위기들을 체험과 성숙과 훈련을 위한 최선의 기회로 만들어 버리는 지혜로운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훗날 본문 말씀처럼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었다. 그때의 고난이 내 인생에는 결정적인 축복의 전환점이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