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프랜시스 라이트(Henry Frances Lyte, 1793~1847) 목사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으로 미국의 음악지 [에이튜드(The Etude)]가 앙케이트를 띄웠을 때 1위로 뽑힌 찬송가다.
작시자 라이트 목사는 무척이나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목사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빈궁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젊었을 때 생긴 천식과 폐병으로 고통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로워 브릭스햄(Lower Brixham)에 혼 후 해변을 산책하는 것을 하나의 일과로 삼았다. 산책하며 하나님과 속삭였고 설교 말씀을 준비하였다. 그가 이 해변 교회로 온 지 어언 24년, 그 연약한 몸으로 우락 부락한 뱃사람들과 성격이 거치른 어부들 틈에서 어떻게 그리 오랜 목회를 할수 있었느냐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라이트 목사의 사랑에 녹아진 그들은 양같이 순해져서 병약한 라이트 목사를 무척 사랑했고 라이트 목사도 그들을 무척 사랑하므로 사랑의 목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44년부터 악화일로 있던 그의 건강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 교회를 사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의사는 브릭스햄을 떠나 기후가 따듯한 이태리나 남유럽으로 가라고 권했다. 1847년 9월 4일 오후 라이트 목사는 그가 늘 거닐던 해변을 마지막으로 거닐면서 고요히 하나님과 속삭였다. "주님, 4반세기를 이곳에서 주님의 사랑하는 양들과 기쁜 일 슬픈 일을 다같이 겪어 왔읍니다. 이 종이 이제 54세의 병든 몸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갑니다. 이제 떠나면 이 세상에서는 다시는 보지 못할 주님의 양들을 돌봐주시고 이 종이 가는 곳 아무도 가지 못하는 쓸쓸한 곳이오나 주님은 같이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서나 죽어 하늘나라에서도 주님이 늘 함께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1절 로워 브릭스햄에서의 라이트 목사의 생애 마지막 2~3년은 행복하지 못했다. 그의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교회를 비워둔 사이에 교회 내부에는 불화가 일고 분열이 생겼다. 이런 사실들이 어둠이 깃든 그의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자식들, 세상의 그 누구도 같이 갈 수 없는 그 쓸쓸한 길을 가야하는 그에게는 그토록 무기력한 자기를 돕는 도움되시는 주님이 어찌나 감사한지 몰랐다. 다시금 그는 함께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2절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어제같이 짧기만 하다. 그동안 기쁨과 슬픔도 많았고 영광스런 일도 많았으나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썩어 없어지되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니 함께 해달라는 간구다.
3절 이 찬송의 배경에는 1820년의 그가 윌리엄 어거스터스 르헌트 목사의 임종의 병상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 노인 모사가 죽음을 승리 할 수 있는 평화와 빛이 필요했었다. 그리하여 그때 되뇌이던 말 "나와 함께 하옵소서"가 이 찬송의 바탕이 된 것이다.
4절 그의 마지막 간구다. 그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브릭스햄의 어려움을 승리했다. 이제 그가 마지막 눈을 감을 때 십자가를 높이 들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그는 불란서 니스(Nice) 근방 망텅에서 세상을 마쳤는데 그의 마지막 말은 "아 죽음을 겁낼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예수께서 나보다 먼저 무덤에 내려 오셨으니 나는 평화와 소망을 가진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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