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 가운에서 모세는 애굽의 공주의 아들로 궁중에서 40여년간 애굽의 문물을 배운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혈기적인 애국심의 발로로 애굽 청년을 때려 죽였다.
그 후 그는 그 때문에 애굽을 도망쳐 나온 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뼈져린 고생과 고독의 은둔 생활로 40년을 살았다.
그대 그의 뇌리에 뿌리 깊히 내렸던 감정은 열등의식이었다.
그가 하루는 양떼를 몰고 광야 깊숙히 들어가서 호렙산에 다달았을 때, 가시덤불에 불꽃이 타는 이상한 불을 보았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애굽에 있는 당신 백성을 구출해 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라는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40년간 그는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 낙오자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그는 갈 수가 없으며 자격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는 겸손 같으면서도 겸손이 아닌 열등감의 발로였다.
겸손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두 성취할 수 있다고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열등감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한다.이것이 표적이니 내가 너를 보낸다"고 하셨다.
모세는 다시 대답했다.
"그렇지만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소리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모세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모세는 열등적인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최종에는 자기 말이 어눌하여 말할 줄 모른다고 하였다.
이러한 열등의식은 우리들에게서도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셨음을 뼈저리게 알 때 그 모든 열등의식은 사라진다 (시139:13-16).
작년 우리 교회는 신앙 부흥의 해로 믿음의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1월부터 10월까지는 영적인 측면에서 내면부흥을 위한 말씀을 나누었다면
이제 11월, 12월은 영적인 측면과 동시에 육적인 삶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 내면의 세계를 치유함으로서,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열등감’ 입니다.
죄를 지어서 생긴 원 마음과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받기 위해서는
감춰진 속마음을 다 드러내야 하지만 그것은 한꺼번에 다 드러내어 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열등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떤 신체적 결함, 가정 형편 때문에, 학력 때문에 열등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등감이 있습니다.
누구나 죄인이듯이 우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이 열등감을 치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실지라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1) 열등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 사물, 사건 등 많은 것들을 평가합니다.
남이 아닌 자기에 대한 평가도 하게 되는데 ‘나는 어떤 사람이다. 나는 누구다’라고 스스로 진단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자기에 대한 평가를 너무 낮게 내리는 경우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자기 평가는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자기 감정입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상 생활과 신앙생활의 모습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열등감의 관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셔도 우리에게 열등감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을 뭘보고 사랑하실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데 하면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B. 열등감의 원인
첫째,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열등감이 생깁니다.
죄를 짓고 나면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나까지 미워하게 됩니다.
나쁜 놈, 못난 놈, 가치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자신을 비하시킵니다.
이럴 때 열등감이 뿌리 내리기 시작합니다. 태어난 이후 어린아이의 열등감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어린아이는 자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의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나를 좋게 평가해 주면 그것이 자기에게 좋은 태도가 됩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의 기본적인 열등감은 있지만 부모가 자기를 평가해 주는 것과 또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해 주는 것에 따라서
자기의 좋은 개념이 형성되기도 하고 열등감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누가 나를 사랑해주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줄을 자기도 무의식 중에 느끼기 때문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구나”하는 개념을 갖습니다.
어려서 미움을 받고 자라면 “나는 나쁜 사람이구나”하는 열등감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열등하게 만들지만
사실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구원받고 주님 안에서 열등감을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문제가 없습니다.
전에는 내 학력, 내 환경이 두려웠는데 예수를 믿고 나서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 깊이 경험하면 예수님이 함께 계시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를 살펴보면 결국 열등감이란 외부적인 조건보다는 나의 내부에 이미 내재된 열등감,
즉 원마음으로부터 시작된 열등감이 더욱 중요하고 근원적인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직접적인 배척, 즉 누구로부터 무시당하든지 버림받는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열등감이 생깁니다.
1) 불행한 가정환경
배척감은 어린 시절의 불행했던 가정환경으로부터 옵니다.
문제가 있는 부모님들(너무나 무섭기만 한 아버지, 술만 드시면 온 식구들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
하루 종일 화만 내고 욕을 해대며 나를 미워하는 어머니,
항상 바빠서 밖으로만 돌아다니시며 나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부모님, 하루도 부부싸움을 거르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는 누가 봐도 버림받는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또 아이에게 평소에 잘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잘 해주어도 예측할 수 없이 비이성적으로 폭발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굉장히 큰 상처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은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커서 남을 잘 믿지를 못합니다.
아이는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을 잃은 채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신앙 안에서 치유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도 영향을 주어서
그 당시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식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아내의 경우 남편이 아무리 잘해 주어도 남편을 괜히 의심하게 됩니다.
남편이 과거 아버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먹고 들어와서 이유 없이 나를 때리지는 않을까하는 식의 의심이 계속 들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쳐서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고 무섭기만 했을 때
하나님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런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목사님이나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처럼 야단을 칠까봐 두려워합니다.
2) 과잉보호: 배척감은 부모의 과잉보호로부터 옵니다.
과잉보호란 무엇일까요?
첫째, 과잉보호란 부모가 아이를 대신해서 선택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피아노를 가르치고, 체육관에 보내는 것이 과잉보호가 아니라 잘해 주든 못해주든 많이 하든 적게 하든지
아이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고 부모가 모든 것을 선택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과잉보호가 어떻게 열등감을 가져옵니까?
아이들은 성장기에 무언가를 자기 힘으로 성취를 해 보아야 합니다.
판단과 계획과 결정과 실행의 그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자신감을 갖든지 반성을 하든지 경험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회는 아이의 자아감을 성장시키는데 아주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과잉보호는 결국아이가 스스로 살아보려는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낮은 자아감을 갖게 하고 이로써 심한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또한 과잉보호 속에는 부모가 아이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있습니다.
너는 그 일을 해 보나마나이다.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철이 없어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세 살 자리 아이일지라도 부모가 나이에 맞는 과제를 스스로 할 수 있게 선택권과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과잉보호는 일단 편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결국 열등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잉보호가 문제가 있음에도 왜 부모들은 과잉보호를 할까요?
그 이유는 먼저 우리 내면에 원 마음과 어려서 받은 상처와 그것을 보상하고 싶어 하는 기대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것 때문에 아이에게 자기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특별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세상에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자녀는 자기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에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자녀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자녀한테 투사되게 됩니다. 즉 자기가 보기에도 자신이 불쌍하니까 자기하고 닮은 애를 자신처럼 보호해 줌으로써 아리를 통해 자기를 위로하는 것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것, 지금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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