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곤고한 날에

  조회수 : 1521    / 등록일 : 2009-05-12   / 출처(저자) : 뉴비전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십자군 운동은 이슬람교도에게 빼앗긴 성지를 되찾자는 운동입니다.
그 중에서도 5차 십자군은 프랑스의 스티븐이라는 목동과 독일의 소년 니콜라스가 중심이 되어
3만 명의 어린이로 구성된 소년 십자군으로 유명했습니다.
소년들로 십자군을 구성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므로 어린이들로 십자군을 구성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지를 탈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굶어 죽거나 유괴 당하여 노예로 팔리거나 병으로 죽어 5차 십자군 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순수 열의만 있으면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없어도 된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대 경종을 울려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의가 넘쳐도 그 과정이 바르지 못하다면 목표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몸 하나 편하고 안 편하고 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연단하시는 이유와 훈련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생각을 키우심
본문에서 솔로몬은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13절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사람이 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열심히 펼 생각만 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키우시기 위해 일부러 굽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때에는 열심히 펴기 위한 노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굽은 길을 주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대단히 생각이 짧고, 유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길로 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고 자신을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한탄만을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 4:19에서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고 했던 것입니다.
‘돌부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 돌부리를 캐고 들어가 보면 원인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배은일 수 있으며, 어떤 이는 불성실일 수 있습니다.
인격의 그릇이 너무 작은 것도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연단으로 말미암아 넘어져 있습니까? 생각을 키우십시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여러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확연히 인식할 때까지 생각을 키우십시오.

1. 의인은 자신의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를 따름(시 119:59)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
2. 지나 온 일들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 수 있음(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거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3. 더 나은 길을 생각하고 깊이 고민할 때 하나님은 바른 길을 보여주심(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거이라

2. 신앙과 인격을 성장시키심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인격을 더욱 성장, 성숙시키기 위해서 연단하십니다.
욥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그가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도 성장과 성숙이 필요한 불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한 우리가 연단을 받아 더욱 성장과 성숙으로 나가야 했듯이
욥도 더욱 성장과 성숙으로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를 통해 그를 연단하셨습니다.
그가 후일에 보인 모습은 확실히 예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름다움에 더욱 큰 아름다움, 성숙에 성숙을 더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는 욥 같은 분이 계십니다.
정말 아름다운 신앙 인격을 지니신 분인데 하나님으로부터 가혹한 연단을 받는 이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을 대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숨겨진 죄악을 떠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욥의 친구들이 범한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범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욥과 같이 아름다움에 아름다움을 더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욥은 부자였지만 더욱 부요케 하셨습니다.
믿음에서도 부요한 인물이었지만 더욱 부요케 하셨습니다. 연단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지 뮐러(George Muller)는 “믿음을 강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믿음의 연단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이유 없는 연단 가운데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 굳은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 성도로 하여금 율법을 준행케 하도록 하기 위해 시험을 주시기도 함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2. 아브라함도 믿음의 시련을 감내함으로 더욱 성숙한 믿음의 경지에 이름 (창 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믿음의 시련을 잘 견디면 주의 재림 때에 칭찬과 존귀가 있음 (벧전 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4. 믿음의 시련을 인내를 만들어 냄 (약 1:1,2)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5. 믿음의 연단을 통해 더 나은 복음의 일군으로 인정받게 됨 (빌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

3. 기도하며 간구하게 하심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한 연단 가운데 밀어 넣으시는 이유와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게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삶에 형통과 평안만 있을 때 대개의 성도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반응은 기도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고 평안할 경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패한 생각이 사람들에게 항상 싹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멀리하는 순간부터 재난이 싹트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실례로 구약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사사 시대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인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만 평안해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악을 행하고
이방의 부패한 행습을 본받기가 일쑤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적으로 무력해진 그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에도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들 자신들의 반석이요 산성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있게 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자신들을 건질 것이란 생각을 절감하였고
이로 인해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고난을 받더라도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회개하고 부르짖을 때에는 지체하지 않고 속히 응답하십니다.
마치 잘못했다고 아파 우는 자녀를 부모가 가슴 가득 안아주듯 그렇게 안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보호를 받으며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 시련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바라기 때문임(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2. 성도를 돌이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재난을 내리실 때도 있음(학 2: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개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3. 환난의 날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결코 이를 외면하지 않으심(시 86: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4. 돌아와 부르짖으면 환난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심(시 90:15)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끝맺는 말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 세상의 즐거움을 조금 잃더라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고통 받는 것을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