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의 아픔을 기쁨으로

  조회수 : 2062    / 등록일 : 2009-05-12   / 출처(저자) : 뉴비전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벗어나 두로와 시돈 지방을 다녀오셨을 때 겪은 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예수님이 상당히 유대주의에 고착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 여인을 무시했습니다. 거의 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평소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귀히 여기는 예수님의 모습도 아닙니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당황한 것은 여인보다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재를 했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그래도 밀고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인은 그 모든 멸시와 천대를 이겨내고 결국은 자기가 지니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어내고 있습니다.
결국 그 모든 예수님의 냉대와 멸시는 이 여인을 알아보기 위한 연단이었고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인이 보란 듯이 이 혹독한 연단을 통과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예수님의 연단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연단을 면제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방인이라고 연단하시고 유대인이라고 연단을 면제해 주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혹독히 연단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인으로부터 연단을 통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누구라도 이 여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1. 이 여인은 주님의 침묵을 부르짖음으로 극복했습니다.
본분 23절에 보면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여인의 간절한 호소에 대해 주님이 보이신 반응입니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라면 누구나 체험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결단을 내리기 전날 밤에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조금 전가지만 해도 응답하시던 하나님께서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나누어 온 주님과의 교제가 실제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속았단 말인가 하는 생각으로 신앙을 떠나는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성(聖)요한은 이런 체험을 ‘영혼의 밤’(the midnight of the soul)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 주님의 침묵을 경험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걸은 더 나아가 그 자리를 떠나가시는 주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포기 하지 않고 소리쳐
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 침묵하실 때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취하십니까?
주님이 칭찬하신 이 여인처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침묵을 견딘 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는 주님의 칭찬이 주어질 것입니다.

① 주님은 스tm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심(사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② 때로 성도들 역시도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음(시 22:1-2)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③ 얼굴을 돌리신다고 해서 우리가 부르지 않으면 안 됨(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라
④ 더욱 간절히 부르짖을 때 응답을 받음(마 20: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2. 이 여인은 주님이 거절을 인내로 극복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에 이어 여인에게 찾아온 것은 거절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거절이 아닌 철저한 무관심에 가까운 거절이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굴욕, 비참, 분노, 자포자기 등의 감정을 동시에 안기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수로보니게 여인이 에수님 앞에 와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했다고 보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는 그 어떤 저항도 이겨냅니다.
거절보다 강한 것이 인내입니다. 밤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애 옆집의 문을 두드릴 때
친구 됨을 인해서보다는 강청함을 인해서 내어주게 되어 있습니다(눅 11:8)
그러므로 연단의 강도가 대답합니까?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습니까? 인내로 이를 극복해 내십시오.
굴욕도 참고, 고통도 감내하고 슬픔도 참으십시오.

① 믿음의 경주는 곧 인내의 경주임(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②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부족함이 없게 됨(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③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됨(마 24: 13)
④ 시험을 참는 자가 진정으로 복된 자임(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3. 이 여인은 주님의 무시와 냉대를 겸손으로 극복했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에 이어 여인에게 찾아온 것은 무시와 냉대였습니다.
그것은 악착같이 따라 붙은 여인을 더 이상 따라붙지 못하도록 완전히 밀어내는 한 마디였습니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인이 사람이 아니라 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따라
주님은 그녀가 이방인인 이상 개 이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대우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정도면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욥 2:9)라고 했던
욥의 아내의 말이 귀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그 사랑 많으시다는 예수님이 맞습니까?” 그러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벌컥 화를 내며 돌아설 만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 마저도 극복하는 발언을 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얼마나 겸손한 고백입니까? 그렇습니다. 여인은 겸손한 이였습니다.
“왜 이방인이라 해서 차별하고 무시하느냐?”는 항변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이 베푸시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받기를 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분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인간이 취해야 할 합당한 자세입니다. 여인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했습니다. 겸손은 대단히 연약한 자의 미덕인 듯 보이나 사실은 대단히 큰 능력입니다.
능력 있는 자가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한 자가 모든 것을 넉넉히 참아냅니다.
이 여인은 그런 여인이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연단을 성공적으로 감내했던 것입니다.
① 자신이 무가치함을 깨닫는 것이 겸손임(눅 15:21)
아들이 가도뢰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②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심(잠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③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를 때가 되면 높이심(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④ 겸손한 자의 소원은 반드시 응답됨(시 10: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끝맺는 말
군인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거듭 태어납니다.
고강도 훈련을 받을수록 강인한 군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군대는 할 수만 있으면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훈련을 실시합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면 자기 생명을 지킴은 물론이요, 혁혁한 전과를 올려 훈장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이유도 이와 유사합니다.
우리가 대적해야 할 원수 마귀와 세상은 그렇게 허약한 대적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연단하실 때에 아주 고강도의 연단을 하십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혹독하게 연단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연단에 들어갈 때 항상 이 여인이 연단을 이겨내고 상급을 얻은 방법을 기억하십시오.
열심히 부르짖고, 끝까지 참아내며, 마지막까지 겸손하십시오.
그리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쟁취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