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기뻐하도다

  조회수 : 1997    / 등록일 : 2009-05-19   / 출처(저자) : 뉴비전 설교자료사전


시작하는 말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도 처음이 아니라 뒤끝이 좋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죽고 못 살 것같이 친하게 지내다가 마지막에는 원수처럼 싸우고 돌아서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얼굴 볼일이 없어도 서로 평생의 원수가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치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사이가 언제부턴가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사이로 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헤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릇 이러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만이 아닙니다. 무형적인 것 가운데도 이러한 것들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도박이나 음주, 세상 쾌락 같은 것은 처음에는 좋습니다. 과정에서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끝이 항상 안 좋습니다. 재산 탕진과 패가망신이 그 끝입니다.
반면에 시작이나 과정은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끝이 좋은 것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문에서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는 연단과 훈련입니다.
그것은 늘 고난의 형태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따라서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보면 항상 좋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단의 결과의 좋은 점에 관해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깨끗하게 합니다.

말라기 3:3절을 보면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금속을 연단하도 제련해서 더욱 값비싸고 고귀한 것을 얻읏 있듯 연단의 제 1차 기능은 정화와 성결의 기능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인격, 가치관, 영혼은 우리의 의복과 대단히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아침에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고 나가도 시내를 돌아다니고 오면 새까맣게 때가 끼듯이 우리의 마음과 인격 역시 아무리 깨끗이 해서 세상을 향해 나가더라도 돌아오면 항상 까맣게 때가 낍니다.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래도 와이셔츠는 세제가 좋아서 깨끗이 다시 세척할 수 있지만
이러한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인격을 닦아낼 세척제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비누로도 세제로도 닦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또 닦아야 한다는 의식조차 갖고 있는 이도 드뭅니다.
그런데 한번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을 받아보십시오, 마치 2,000도가 넘는 용광로에 철광석을 놓고 가열하면
온갖 잡티와 이물질을 다 제거하고 순도 99.99%의 금이 나오듯 그렇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집니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완악한 자도 일단 연단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 말이나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깨끗하게 변합니다.

① 수다한 비누를 써도 사람의 죄악이 사라지지 않음(렘 2:22)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② 악에 익숙한 사람이 스스로 선을 행함은 불가능함(렘 13: 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③ 하나님의 연단 속에 우리는 정금같이 나옴(욥 23;10)
나긔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④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때 깨끗케 됨(시 119:9 ; 딤후 2:22)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 분별력을 줍니다.

다음으로 연단은 분별력을 높이는 기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5:14을 보면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단은 사람의 분별력을 키웁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이 많고 기능이 뛰어난 것 같아도 판단이 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① 성도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를 배움(시 119:71)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② 연단받은 자는 이웃의 형편을 잘 이해하게 됨(딤후 2:19-22)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3. 존귀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단의 기능은 사람을 존귀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본문 7절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약간 다르게 표현해서 로마서 5: 3,4에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단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존귀와 영광의 소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즉 보잘것없는 성도를 빛나게 하여 영광스런 자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연단으로 완벽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의 연단을 통과했다고 해서 우리의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 계속되는 연단을 통과하면서 확연히 다른 결괄르 얻게 됩니다.
하나둘 잘못된 생각들, 약점들, 문제점들이 고쳐지면서 우리의 모습은 거룩해지고 이에 따라 점점 존귀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사람이 보아서도 아름다운 고상함이 스며들 듯 몸에 배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더라도 책망 받을 일보다는 칭찬 받을 일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영광스럽고 존귀하신 분이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연단으로만 가능합니다.
① 연단을 받고 이를 잘 통과하면 영광스러움을 덧입게 됨(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② 연단은 성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덧입게 함(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③ 인내하고 끝까지 선을 행하는 자들은 영생의 삶을 살도록 축복하심 (롬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끝맺는 말

잠언 14:13을 보면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인생의 한계와 연약함을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하고 씁슬한 여운이 남는 행복과 달리 눈물과 수고 이후에 오는 행복도 있습니다.
시편 126: 5,6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이 그러한 행복을 지칭해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은 눈물을 흘리지만 머지 않는 장래에 기쁨의 단을 거두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그 슬픔은 ‘기쁜 슬픔’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연단 받는 것도 이러한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괴롭고 힘들지만 그 마지막이 좋습니다. 또 우리는 그로 인해 크게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단으로 말미암아 성결해지고, 연단으로 말미암아 분별력을 키우며, 연단으로 말미암아 존귀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연단을 잘 받아서 이 모든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