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말:"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 나오는 계영배(戒盈盃)를 설명하는 한 대목입니다. 계영배란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는데,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술잔의 이름이 의미하듯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는 잔입니다.
그렇습니다. 적당한 절제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 인생은 계영배에 술을 가득 채우려다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우리에게 큰 불행과 슬픔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우리 삶 속에 지나침으로 인해 생기는 불상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절제라는 덕목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바울은 디도에게 교회 감독의 자격 요건을 제시하면서 절제를 가장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분을 내는 일, 술을 마시는 일,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것, 더러운 이를 탐하는 것, 근신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절제와 관려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성도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절제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도로서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나치게 먹는 것을 절제합시다.
단테의 [신곡(神曲)]에는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죄악이 나옵니다. 이 일곱가지 죄악은 중세 시대에까지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졌는데, 여기에는 탐식(貪食)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이들은 탐식이나 폭식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있습니다. 많이 먹는 것을 죄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은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잠 23:2)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탐식이 목에 칼을 두고 금해야 할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실로 성도들에게 탐식이나 폭식은 합당치 않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폭식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입니다. 폭식은 활성산소를 과다하게 생성시켜 각종 질병을 불러오고 노화를 촉진시켜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은 결과로 빚어진 것이 비만이며, 그리고 그 배후에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성경의 견해입니다(시 78:18).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먹는 것에 절제하십시오. 성도의 마땅히 지켜야 할 바입니다.
① 과식은 건강을 해치고 지혜가 없게 함(잠 25:16)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② 술에 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함(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③ 탐심은 우상 숭배가 됨(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식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④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게 됨(잠 28: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2. 지나치게 보는 것을 절제합시다.
현대는 광고의 홍수 시대입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광고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너무도 쉽게 음란물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깁니까? 그러한 것들을 즐기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요자가 있기에 공급자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은밀한 가운데 그런 것을 원하는 수요자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눈으로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한 자라고 말씀합니다(마 5:28). 구원받은 성도는 그 행실뿐만 아니라 그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까지도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보는 것에 절제합시다. 아름다지 못한 것들, 나쁜 것들을 보지 않도록 절제 하십시오. 그런 것들에 중독이 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우리의 몸이 병들고, 우리의 영혼이 심각한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악한 것들로부터 눈을 들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눈을 떼지 말아야 함(잠 3:21)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 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② 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기에 우리 눈은 소중함(사 59:10)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③ 안목의 정욕은 세상으로 좇아온 것임(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④ 성도는 주의 얼굴을 보기에 힘써야 함(시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3. 지나치게 쓰는 것을 절제합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과시 소비와 과소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과소비(overconsumption)는 수입보다 더 많은 금액을 상품 구입에 지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신용카드, 백화점 카드 등을 사용하여 자신의 소득보다 훨씬 더 많은 상품을 구매를 함으로써 자신의 가계에 큰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하고 재산 압류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시 소비란 자신의 재산이나 지위를 자랑하기 위해 비싼 사치품을 구입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석, 고급 승용차, 비싼 가구 등 사치품들을 많이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시 소비는 일부 상류층과 부유층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산 소비재의 수입을 부추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경제를 어렵게 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두 가지 잘못된 소비 형태는 성도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청빈하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러했고, 청교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이전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절제를 배웁시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님은 세면할 때에 결코 두번 비누칠을 하지 않을 정도로 검소하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검소한 삶을 살아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① 세상 물질을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해야 함(고전 7:30, 31)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②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게 됨(잠 11:16)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③ 여자는 아담한 옷과 정절과 염치로 자신을 단장해야 함(딤전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끝맺는 말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딤후 3:3에서는 말세의 특징 중 하나를 절제치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제를 모르고 극한 방탕의 길로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성도들의 사명은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절제의 고삐를 잡지 않는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먹을 것을 절제합시다. 보는 것을 절제합시다. 그리고 쓰는 것을 절제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절제된 삶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대로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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