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위하여

  조회수 : 3049    / 등록일 : 2009-07-06   / 출처(저자) : 뉴비젼설교자료모음집


시작하는 말 : 성도의 모든 행복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31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죄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그들의 자유로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바로 성도된 자의 삶의 목표요, 행동 강령인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문제는 여기서 벗어날 때 생깁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뿐더러 사람 사이에도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악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 대신 이기적인 자기만족과 기쁨을 구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악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대신 이기적인 자기만족과 기쁨을 구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기쁨과 만족을 구하는 데서 분열과 다툼이 일어났기에 이것을 교정하기 위하여 오늘 본문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과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2절을 보십시오. 본문에서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성도들은 적어도 타인이 자신으로 인해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는 자신의 자유를 남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약자를 배려하지 못한 탓입니다. 한 교회 안에는 사회적, 신앙적 수준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에 대하여 입장이나 이해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누가 양보를 해야 할까요? 수준이 높은 자, 강한 자, 자유한 자가 양보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신 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약자를 배려하여 그의 입장과 이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실족하는 자가 없습니다.
한편 여기서 유대인, 헬라인, 하나님의 교회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에 속한 사람이나 세상에 속한 사람 모두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전도한다면서 논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이것이 지나칠 경우 상대방에게는 걸림돌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논쟁을 삼가야 합니다. 논쟁이 이기고 그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배려가 오히려 불신자들을 감동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도 교회에서 생활하듯이 생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든 세상에서든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숙한 성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성도는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러야 함(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② 항상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거리낌이 없도록 힘써야 함(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③ 아무리 작은 자라도 그를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음(마 18:6, 7)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④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함(롬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⑤ 실족케 하기 보다 서로의 짐을 지며 도와야 함(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2.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 소극적인 것이라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는 말씀은 보다 적극적인 권면의 말씀입니다. 단지 다른 사람을 낙심치 않게 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 살전 2:4)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권할 만한 덕이 아니라고 강하게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사상이 일관성을 상실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갈 1:10이나 살전 2:4의 경우 인간적인 환심을 사기 위해 복음의 진리를 포기할 수 없음을 강조한 반면, 여기서는 연약한 사람들을 신앙으로 굳게 세우기 위해 그들의 형편을 헤아리고 그들의 유익을 구해 힘써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기쁘게 함으로써 그들을 믿음 가운데로 이끈다면 그것만큼 선한 일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유익을 뒤로 하고 다른 사람들, 그리고 공도체의 유익에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고전 13:5), 사랑으로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야 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는 자들, 연약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필요를 깨달아 그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① 성도는 이웃을 기쁘게 하고 선을 이루며 덕을 세워야 함(롬 15: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②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야 함(빌 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③ 구체적으로 헐벗은 형제에게 쓸 것을 주어야 함(약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④ 자기의 유익이 아닌 타인이 유익을 구해야 함(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⑤ 어려운 지체를 돕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함(행 11:29,30)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3.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33절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즉 바울은 모든 일에 거룩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모든 일을 실행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그들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고전 9:19).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되었으며,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같이 된 것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 9:20-22). 이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익의 극치가 바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성도가 구제와 봉사와 같은 선행에 힘써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은 결국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복음을 알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할 뿐 아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자들의 입술을 통해 찬양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거룩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고 모든 일을 행하므로 우리 입으로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술로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영광돌리게 해야 할 것입니다.

①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임(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② 이런 목적을 알았던 바울은 어떤 모양으로도 사람을 구원하기를 소망함(고전 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라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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