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아그릿바 왕과 베스도 앞에서 다메섹에서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선지자가 예언한 모든 예언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질서정연하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과 그 십자가에 대해서 설명하자 베스도가 벌떡 일어나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라고 말합니다. 베스도는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환상을 보았다.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을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황당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니까 바울이 미쳤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제가 미친 것이 아닙니다"하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아그릿바 왕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아그릿바 왕이시여 선지자를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을 압니다"라고 자문자답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왕이 되어서 선지자를 안믿는다 할 수 없으며, 선지자를 믿는다면 선지자가 예언한 그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믿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아그릿바는 선지자를 믿는다고 시인하게 되면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하는 격이 되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곤궁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적은 말로 권하여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느냐?"하는 말로 완곡하게 거절합니다. 이때 바울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당신들이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보다 내가 훨씬 더 행복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이렇게 쇠사슬에 묶인 것 말고는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천의 당당한 자부심을 표현한 말인 것입니다. 즉 바울에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왕이 있고 총독이 있고 고관들이 있습니다만 조금도 그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부와 권세, 명예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 내가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내면에 놀라운 기쁨과 자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반면 바울은 죄수복을 입었고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서 마음속을 보게 되면 지금 바울의 마음속에는 죄사함 받은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자유함이 있습니다. 진리로 인해서 모든 두려움과 모든 공포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자유가 바울의 가슴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겉으로 볼 때는 자유로운 것 같으나 사실은 노예입니다. 죄악의 노예요 정욕의 노예인 것입니다. 그리고 총독은 백성을 두려워하고 황제의 눈치를 봐야 됩니다. 왕도 총독의 눈치를 봐야 하고 백성의 눈치를 봐야 됩니다. 여론에 묶였고 사람에 묶였고 인기에 묶여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일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불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 총독자리에서 쫓겨날지, 언제 지위에서 짤려나갈지 몰라서 불안 가운데 전전긍긍하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내면을 보았기에 바울은 "당신들도 나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그 마음속에는 늘 불안과 초조와 공포가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이 그 속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처럼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크리스천의 자부심입니다. 그 자부심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게 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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