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1년 면죄부에 대한 루터의 95개조의 제시가 발단이 된 종교개혁은, 독일 황제까지도 관여하게 되었다.
황제 카르 5세는 프랑스에 대한 정책상 교황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루터에게 그 주장을 취소하게 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루터는 1521년, 국회에 소환되었다. 국회에서 루터는 1521년 황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복음주의 신앙을 표명했다. 한편 황제는 그런 그를 독일 제국의 죄인으로 단정했다. 이것은 루터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과를 예측하면서도 용기를 갖고 국회로 향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설사 국회의 지붕 기와의 수만큼 많은 마귀가 내게 덤벼들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나는 갈 것이다."
이 신앙의 결단이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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