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저축한 까마귀

  조회수 : 785    / 등록일 : 2012-09-11   / 출처(저자) : 생각나무에 열린 우화, 황헌식


가을 까마귀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 끝에 앉아 마지막 남은 감 세 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 달디 단 꿀맛도 이제 다 먹어버리고 3개밖에 남지 않았구나……. 저것마저 따먹고 나면 이제 1년 동안 맛볼 수 없을 텐데."
까마귀는 감이 달려 있는 가지로 날아가, 부리를 익은 열매에 비비며 침을 꿀꺽 삼켰다.
"참아야지. 냄새만 맡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그는 먹고 싶은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희망을 저축해 두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까마귀는 높은 가지에 앉아 붉게 익은 감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아직 내겐 맛있는 감이 세 개나 남아 있어. 먹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따먹을 수 있거든."
까마귀는 붉게 익은 감만 생각하면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한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가을의 끝남을 아쉬워하듯 때 잃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강한 비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앙상한 나목(裸木)들은 비음을 내며 울었다. 까마귀는 흔들리는 둥지에서 찰흑같은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그러나 그에겐 꿀보다 달콤한, 저축된 희망이 있었다.
"그래, 내일 아침에는 그 중 딱 한 개만 따먹어야지. 그래도 아직 두 개가 남아 있거든……."
지난 밤을 잊은 듯, 다음 날 아침은 눈부시게 맑았다. 까마귀는 가슴 설레며, 이제 오래 참아온 희망 하나를 따먹기 위해 푸른 하늘을 우아하게 날아 감나무 가지 끝에 내려 앉았다.
그러나 감나무엔 앙상한 가지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