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4)
아이오와주(州) 번호판을 단 집채만한 뷰익 승용차 한 대가 학교 현관 앞에 멈춰 섰다. 새학기 초의 8월이었다. 그때 나는 휘튼 대학 학생과장으로서 학생들 및 학부형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나누려고 학생들 개개인의 사진과 그 가족 사항을 빠짐없이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나는 승용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억센 농부 한 분이 내리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를 소개하고 그분의 성함을 정중하게 언급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 농부의 손은 두툼하기도 했지만 몇 년 잘 마른 나무토막처럼 거칠었다. 그에 비하면 내 손은 두부처럼 연약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농부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존경을 받는 충실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황송한 듯 쳐다보았고 휘튼 대학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움을 거두지 못했다. "어이구 선생님, 제 자식 놈을 잘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훌륭한 학교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곧이어 승용차 뒷문을 열고 농부의 아들이 나왔다. 그 모습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왜소하였고 아버지 밑에서 농사일을 한 번도 거들어 본 적이 없는 나약한 학생임에 분명했다.
"저는 비록 초등학교밖에 못나왔지만 제 아들 녀석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이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든 합니다."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좀 서글픈 심정으로 그 부친을 바라보았다. 그는 위대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지 못했으며, 자신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또한 알지 못했다.
수십 년간 손톱이 뭉그러지고 등뼈가 휘도록 농사에 매달려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일구어 낸 훌륭한 농부였다. 그러나 그 농부는 자신이 위대하게 일구어낸 그 삶을 아들에게는 가르치지 못했다. 못 배운 것을 한탄하느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중요한 유산, 곧 일할 줄 아는 남자라는 유산을 물려주지 못했다.
몇 달 후 나는 그 아이의 부친을 불러서 아들을 데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일렀다. 그의 아들은 진짜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우리는 성공이 내내 우리 안에 있고 종일 우리와 같이 있음에도 종종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위대함만 쳐다볼 뿐 자신 안에 있는 위대함을 보지 못한다.
꿈이나 기대를 이루는 것이 성공은 아니다. 성공은 하나님께서 애초에 당신에게 의도하신 그 모습을 어느 곳, 어느 시간에든 자신이 스스로 실천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여러분을 위대하게 하셨다. 그분은 지금 이순간에도 여러분을 성공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계신다.
마음을 위한 묵상 : 아, 나는 자주 성공이라는 것을 기대와 꿈을 이루는 것으로, 혹은 또 다른 무엇으로 생각했었다. 성공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내게 그토록 가르쳐 주고 계심에도! - 필립 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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