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지나가면 으레 발자취가 남는다. 더러는 그것이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가벼운 파도 한 자락에도 쓸려 내려가는 보잘것 없는 발자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잘것 없는 발자취란 없다. 파도가 발자취를 뒤덮는 것은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잠시 다녀가는 것일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자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발자취는 가공되지 않는다. 어떤 모서리도 만들지 않는다.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의 힘은 규격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법이다. 아름다운 빛은 물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질료의 원시성에서 나오는 법이다.
뒤돌아보라. 우리가 지나온 길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지나온 길이 우리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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