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두 가지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낳은 자손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는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넘었습니다. 10대 소년의 몸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꿈을 꾸면 고향에서 사는 ?꿈을 꿉니다. 형편만 되면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을 꼭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입니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면 짐승도 자기 집을 찾고 사람도 자기 삶의 뿌리인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이것을 소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손을 ?찾는 것은 자기 연장의 본능에서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내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인 자손을 ?찾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자손을 귀하게 여깁니다. 자기는 못 먹으면서 자식은 잘 먹이고 ?싶어하고, 자니는 헐벗고도 자식만은 남에게 떨어지지 않게 입혀보려 하고, ?자기는 공부를 못했어도 자식만은 좋은 학교에 보내보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이번에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학생을 둔 부모님들이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다가오는 11월 23일에 있을 대입수능시험을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기대하시는 대로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정성을 기울입니까? 단순히 내가 자손을 남겼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자손을 남겨서 이 사회에 어떤 영향력과 의미를 후대에 ?계승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보다 유능한 인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자손을 남기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소원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사도 바울에게는 육신의 자손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바울의 육신의 자손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바울에게 영적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영적인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정도는 육신의 부모가 그의 자녀를 기를 때 쏟는 정성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자녀들을 통한 신앙의 계승이야말로 바울이 ?생애 가운데 남길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유산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4절을 보세요.
"같은 믿음을 따라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디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참 아들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이 '나의 아들'. '참신앙의 아들'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디도뿐이 아니었음을 그의 편제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디모데후서 1장 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빌레몬서 10절에 보아도 바울이 자기 아들이라고 부른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오네시모입니다.
이 오네시모를 바울은 어떤 아들이라고 불렀습니까?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했기 ?때문에 그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직접 전도하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양육한 사람을 이렇게 자기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가히 ?전세계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한편 바울은 특별히 ?몇 사람을 양육시켰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특별히 신앙적인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에게는 그런 믿음의 아들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사역은 그의 ?사후에도 영광스럽게 계승될 수가 이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계승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정말 저분은 내 믿음의 어머니셨습니다"
"저분은 정말 내 믿음의 아버지셨습니다"
무슨 형식이나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우리의 믿음이 그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화를 주어서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고 그들에게 신앙적인 격려와 권면을 ?아끼지 말아야겠지만 그들 가운데는 나의 신앙을 전폭적으로 전수 받아 ?그들을 가리켜서 가히 내 믿음의 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두 ?셋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계승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디도서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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