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재 (Saram )
■대구교회■==부활안에서 만유를 지배함== 02/08 00:35 166 line
사람의 두 번째 타락과 구원(15) (창 9:1_3)
(부활 안에서 만유를 지배함)
사람은 창조 안에서 만유를 포함하고 부활 안에서 만유를 지배
한다. 창조 안에서는 씨 맺는 채소가 식물로 주어졌고 부활 안
에서는 모든 동물이 식물로 주어졌다. 창조 안에서는 단지 움직
일 수 없는 식물만 먹을 수 있었지만 부활 안에서는 움직이는
모든 동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창조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지만 부활은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창조는 시공간 안에 있는
것이지만 부활은 영이요, 생명에 있다. 창조 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 없었지만 부활 안에서 제자들을 찾아
가셨을 때는 문을 열 필요가 없었다. 창조 안에서 주님은 땅에
있었지만 부활 안에서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셨다. 창조
안에서 주님은 당신 자신의 개체였지만 부활 안에서 주님은 우
리 안에 살아 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인격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지배하
는 것이다. 이 인격은 창조가 아닌 부활이다. 사람은 산 혼으로
창조 되었다. 그 혼은 인격의 그릇일 뿐 인격은 아니다. 인격은
생명나무를 먹고 부활함에 있다. 그러므로 창조 안에 있는 사람
은 움직일 수 없는 식물 만을 먹을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
면 그 인격은 식물적 인격이다. 인체는 식물신경(자율신경)과
동물신경(수의신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신경에는 의식이
없다. 의식이 없는 생명은 식물인간이다. 창조를 식물인간에 비
유한다면 부활은 의식인간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식물적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이 번성하
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신하고 그를 나타내는 것은 인격이다.
이 인격은 부활인격이다.
노아는 사망을 통과하고 부활했다. 만유는 창조 안에 있다. 창
조 안에 있는 것은 창조를 지배할 수 없다. 사람은 천사보다 못
하게 창조 되었다(히 2:9). 그러므로 사람이 천사를 지배하려면
부활생명을 얻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은 죽음을 통과하고 부
활하였음으로 천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담은 식물을 지
배할 수 있었고 노아는 동물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천사까지 지배할 수 있다.
창조 안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부활 안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높여진다. 동물을 식물로 먹을 수 있
게 된 노아는 천사를 지배할 주 예수님의 예표였던 것이다. 죽
음이 더할수록 부활이 더해지고 부활이 더할수록 지배가 넓어진
다.
땅이 회복 되면 심음과 거둠이 쉬지 않게 되고 사람이 회복 되
면 생육하고 번성함이 쉬지 않는다. 사람의 인격이 땅에 충만하
면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부활 안에 있는 노아나 그 식구들은 동물을 식물처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이제 동물 위에 있게 된 것이다. 창조 안
에서 동물과 사람은 같은 날 안에 있었다. 그러나 부활 안에서
동물과 사람은 다른 날 안에 있다. 동물적 창조는 여섯째 날이
지만 부활의 인격은 여덟째 날이다. 그 날은 새 창조의 첫 날인
것이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여섯째 날에 창조 되었지만 그리스
도 안에서 여덟째 날에 태어난 것이다. 부활생명은 동물적 생명
이 아니다. 동물은 식물을 지배하고 부활생명은 동물을 지배한
다. 그러므로 식물을 먹듯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육체였다. 육체가 그 사람이었다. 혼으로서
의 사람은 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의 모든 생각은 육체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선이든, 의이든, 육체적이든, 정신
적이든 간에 육의 소산이었다. 심지어 종교적이고 영적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 육의 소산이다. 사람은 육체를 뿜어낼
때도 혼을 통해서 뿜어낸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것이라 해서 그
것이 육이 아닌 것은 아니다. 또 종교적인 것이라고 해서 반드
시 영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영적인 것도 부활생명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모두 육의 변형에 불과하다. 죽음을 통과한
부활생명 아닌 모든 것은 육이다. 하나님은 혈육 있는 모든 생
물을 지면에서 제하였다. 그것은 부활생명을 위한 것이다.
무당들도 영에 이끌려 다니고 어떤 기독교인들도 영에 이끌려
다닌다. 하나는 악한 영이고 하나는 선한 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함정이다. 아무리 성경에 이끌려 다닌다 해도 그
사람이 부활생명이 아니면 육인 것이다. 기독교인 치고 누가 자
신이 악령에 이끌리고 있다고 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