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제 (k2kcm )
칼 바르트의 부활관 04/03 09:58 206 line
*** 칼바르트의 부활관 ***
감신대: 홍정수 교수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신앙고백을 해왔지만, 그 신앙고백 속에는 아주
불분명한 것,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그냥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부
활"에 대한 우리들의 고백은 특히 그러하다.
오늘의 한국교회들은 기독교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높은 성장율을 보
이고 있기에 그 자산에게는 마치 아무 문제도 없는 양 착각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같이 안일한 자세가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일
반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맹목적인 복종이니 무모한 광신은 점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 환란의 본산지 - '부활' 신앙
한국교회의 부황신앙이 불분명한 점, 모순되는 점을 그대로 간직하고있
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입증할 수 있다. 각 교회들이 사용하
고 있는 장례식 예문은 중세교회의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복사해 놓은 것
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그래서 이교도들의 사상인 영혼불멸괴 기독교의
독특한 사상인 몸의 부활이 나란히 고백되고 있는 실정이다. 영혼불멸이
란, 인간의 영혼은 선하고 영원하며 육체는 악하고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헬라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아주 평안히
맞이할 수가 있었다. 즉 죽음이란 유한한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무한한영
혼이 해방됨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영왁 육이 하
나의 인격체라고 믿으며, 그 인격체가 통째로 죽었다가 통째로 다시 살
아남을 믿는다.
그런데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상이 혼란스럽게 공존함으로써 지금의한
국 교인들은 '부활'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믿는다. 우리가 죽
으면 썩어지나 영혼은 직접 하나님께 가거나 낙원으로 간다. 그리하여육
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거기서 수억년(?)을 지내다가 어느날 주님께서 재
림하실때 비로소(그러니까 그 영혼은 '주님'과는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공중이나 지상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육체를 덧입게 된다. 이것은 중세교
회의 일반적 신앙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서신
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형태의 신앙은 전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부활 신앙은 어떠한 것일까.
* 부활 신앙의 무신론적인 오해
이제부터는 스위스의 개혁파 신학자 바르트의 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재검토해보자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바르트를 내세우는 것
은 그가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평범하기
에 그를 다룬다. 그의 부활 사상에는 독특한 것이 거의 없다. 나아가 이
미 한 세대 전의 신학자이기에 비판할 점도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지극
히 중도적인 그의 사상을 소개한다).
그러면 바르트가 거부하고 있는 잘못된 형태의 부활신앙부터 생각해 보
자. 부활신앙이 인간의 생물학적인 죽음의 극복이라거나 죽음 다음의 저
세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것이라면, 바르트의 생각으로는 그것을
이교도적인 신앙일 뿐이다. 필자는 그런 신앙을 가리켜 '무신론적인 부
활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 인간의 생물학적인 죽음의 극복과
내세를 믿는 것이 어째서 무신론적인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미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그
러나 물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살기를 원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
한다.그래서 건강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한다. 의를 위해서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너 순교자들의 시대와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서 마치 전
혀 다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듯 해졌다.
우리는 살고 싶어하며 그것도 무한히 사고 싶어한다. 영원한 삶에 대한
이같은 인간의 꿈은 오래되었으며 또 집요하다. 진시황제도 불로초를 찾
아오라고 동방으로 사람들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지금 미국에는 여러 구
의 시체들이 어느날엔가 동면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냉동실에 보존되
어 있다고 한다. 모든 피조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운명, 시간 속의 존
재, 그 자체를 극복하려는 것은 인간의 욕심들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인간의 시간성을 초극하는 비법을 발견해 내지못
하였다. 단지 무수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그 해
답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기독교의 부활이어
떻게 이 시간성의 문제의 해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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