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어머니를 보라
자료원: 동대문감리교회 장기천 목사
성경본문: 삼상 1:9-20 눅 1:46-55
인류의 발달과정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이 인류사회에 도입된 것은 하와가 생긴
이후부터였다. 하와가 만들어져 아담과 동거함으로써 가정이라는 인간공동
체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여인에게 그
자리를 위임하신 셈이다. 이것은 존 웨슬리의 사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성서 속에서 존경받을 만한 어머니 세 사람에 대해 살펴 보려는 것이
본 설교의 의도이다.
모세의 어머니를 빼놓을 수 없다.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의 인종말
살 정책을 수립 애굽사람 보다 우생학적으로 뛰어난 이스라엘 남자 아기의
해산제한령을 내렸다. 그런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벰"은 이에 구애받지 않
고 모세를 해산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바로 왕궁의 양자로 입양을 시켰
다. 발각이 되면 일가족이 멸문지 화를 당하는 일대 모험이었다.
서양속담에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 그대로의 어머니였
다. 요새는 여성해방운동의 부작용으로 "여자는 강한데 어머니는 약하다"는
속담이 익살스럽게 유포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
게 한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기시켜 준다. 늙은 여인의 해산을 위한 기도는 상식적으로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한나는 "이 계집종을 저버리지 마시고 사내 아이 하나
만 점지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 아이를 야훼께 바치겠습니다"그의 기
도가 얼마나 깊은 몰아(몰아)의 경지에 이르렀던지 옆에서 지켜 보던 제사
장 엘리의 눈에는 늙은 여인이 술 취하여 실성한 모습으로 보여졌다. 기
도한다는 것은 자기에게서 떠나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이다. 한나야말로 아
들의 해산을 위해 이런 심경으로 기도했다.
예수의 어머니는 처녀의 몸으로서 아기를 잉태했다. 하늘 아래 희한한
일도 있었다. 남자와의 성관계도 모르는 여인에게서 아기가 태어나니 날벼
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역
사이시니, 무에서 말씀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오던 마리아로서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세 어머니들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위대한 역사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병든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손이 약손이 되고 망나니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기도가 구원이 된다고 말하
는 것이리라. 세 어머니들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
은 공통점이다.
(1) 위험에 참여하는 어머니
모세의 어머니 요게벰은 대담무쌍한 어머니였다. 사랑하는 자식이니
먼 광야에 숨어서 남몰래 키움직도 한데 요게벰은 그렇지 않았다. 갈대나무
배를 엮어 아기를 태워 바로 왕의 누이에게 띄워 보냈다. 잘못하면 아기는
물귀신이 될 수도 있고, 바로왕궁에서 이것을 빌미로 더 가혹한 이스라엘
멸종정책을 시행할 구실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예수의 어머니도 아기를 해산하고 잘 키웠을 뿐만 아니라, 헤롯왕의
살육정책을 피하여 애굽망명의 길에 나섰다. 그리고 아들이 못박힌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고난의 현장에 서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아들과 함께
죽을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었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20세기 초엽의 영국 시인 타링(R.Kipling)의 "어머니 노래"는 우리에
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오 어머니, 나의 어머니
만일 내가 십자가에 달리었다면
어머니는 그곳까지 오셨으리"
이땅의 많은 어머니들은 아직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든 머리를
숙이며 발을 씻어 주기를 사양치 않는다. 목숨을 내어 놓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어머니의 기도와 호소는 자녀들을 바른 길로 불러내며 위험에
서 건져낼 수 있다. 자식에게 훌륭한 사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를 입
버릇처럼 타일러 온 어머니 아버지들이 자식이 나라와 겨레의 권리와 자
유를 위한 싸움에 몸바치면 이를 말리고 나서니 부모의 세대와 자식들 세
대간의 대화는 양극화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는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드리면서 "죽느
냐? 사느냐?"의 문제로 고뇌하며 아버지께 도와 달라고 탄원했다. 아버지
하나님은 묵묵부답. 결국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택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지막 절규에서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