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불트만

  조회수 : 626    / 등록일 :    / 출처(저자) :


III. 불 트 만

불트만의 역사관은 신앙과 역사를 단절시켜 놓는다. 기독교는 그가
보기에 "과 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현재 신자들의
경험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 는가"에 더 관심을 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천 년 전에 역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는 그기 중요한 것이
못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오늘날 그것이 신 자들에게 주는
의미이다. "역사의 의미는 언제나 현재에 있고, 현재가 신자들에 의해
종말론적인 현재로 느껴질 때 역사에 있어서 의미는
실현된다"(Braaten,P 133).

불트만은 역사적 관념론자들에게 "해석자는 본래의 창조적인 순간을
재경험해 서 생명 있는 표현을 해야하는 것"을 배웠다.(Ibid.).
그에게는 "역사적 지식의 객관성은 완전 궁극적 지식의 의미로는
얻어질 수 없다."왜냐하면 "사고의 객관 화는 자연 과학에서나
통용되지 역사에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지식은 오로지 "깨닫는 주체의 아주 개인적인 생명력"에 의존하게 된다
(Bultmann,History Eschatology Bros,1957,P.121). 그는 콜링우드의
가르침&
에 역사가의 실존적인 참여를 더한다. 역사가는 "미래를 향한 자신의
책임을 깨 달음으로 역사적 현상에 자신을 열어 놓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런 의미에서 가장 주관적인 역사 해석인 동시에 가장 객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Ibid,P 122). 이러한 불트만의 역사와 신앙의
분리는 세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의 주된 관심을 20세기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초자연 을 믿지
낳을 것이다. 예수가 물 위로 걸어 갔다면 귀신을 쫓아내었다든지
죽은 뒤에 육체로 다시 부 활했다든지 죽은 뒤에 육체로 다시
부활했단지 하는 내용은 복음의 본질적인 것 도 아닐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신화는 현대 인들에게 참
복음을 위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복음이 역사
위에 세워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역사는 믿 을 만한 것이
못되고 언제든지 해석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 연 구의
결과를 불변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째로 그러기에 불트만은 신교의 전통적인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 위 에 서기로 결심한다. 성경의 가르침이 신화와
뒤섞여서 있기에 신앙을 위한 객 관적인 지식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서 "객관적인 용어로 표현된 (신화 적) 세계관 속에
사로잡힌 신앙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었다"(Bultmann,Kerygma&
Myth,SPCK,1:210)고 선언한다. 그래서 그는 신화를 제거하기 위해서
신앙의 근 거로서의 객관적 지식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불가시성은 그 자신과 그의 행위를 가시적으로 만드는
모든 신화를 배제한다. 또한 그것은 객관적인 사고의 단어로 형서된
불가시성과 신비의 개념 역시 제거한다. 하나님은 객관적으로보이지
않으시고 모든 외형적인 모양에 대 항해서 오로지 자신을 믿도록
만드신다. 마치 양심의 송사에 대항해서 신앙의 의인의 교리함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으려는 이는
자신의 신앙을 세울 만한 아무것도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공중에 그냥 떠 있어서 그에게 들려지는 말씀의 증거를
요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같기 때문이다.
안전은 모든 안전을 버리고 루 터가 말한 것처럼 어두움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데서 찾아지는 것이다. (Ibid,PP.210-11)

여기 설명된 신앙 의인의 교리를 역사나 교리 선행 등을 몽땅
집어던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개인의 실존적인 결단 외에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 없 게 되고 만다. 그가 보기에 신앙은 실존적인
자기 이해이지 어떤 객관적인 교리를 옳다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객관적으 로 중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Jesus X Mythology,Scribner,1958,P.71).&
그러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내게 개인적으로 들려주는 말씀이 된다.
그것은 실 존 일반에 대해서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참된 실존을
준다."(Ibid,P.53)고 말한 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설교를
읽고 독자들은 신앙과 불신앙 그리 고 본래적인 삶과 비본래적인 삶
중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입장이 된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사건의 진실성을 믿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삶을 그리 스도의 것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새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죽으을 경험해 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포기에 결심에 의해서 얻어지는 삶의
새 형 태이다. 물론 불트만의 신앙의 견해에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가치도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참된 인간 본성의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