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 결 론
지금까지 19세기부터 세속적 역사 해석의 방법이 계시의 해석에는
얼마나 무력 했었는지 살펴보았다. 과거의 사실에 대한 자연 과학적인
방법이나 인문 과학적 인 방법또는 양쪽을 복합한 어느 것도 그
출발점에 있어서 어떤 전제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관찰자의 인식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관찰자 에 따라서 전제도
아울러 변하므로 해석된 결과는 언제나 관찰주의 지식의 투영 일 뿐
이었다. 자연 과학이나 인문 과학에서 출발한 어떤 전제이건 성경을
해석 할 때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내용의 제거 또는 재해석의 과정이
따라 나왔다. 그 리하여 성경의 내용은 액면 그대로의 신앙의
객관적인 지식으로서의 역할을 중 단하고 그 대신에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차원에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해석이 전통적인 용어를
그대로 입은 채로 다른 의미로 주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한마 디로
복음의 혼잡일 뿐이었다. 이제 다시 한 번 어거스틴 이래로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져온 신본주의적인 역사 해석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개혁 자들의 가르침과도 부합된다.
계시는 계시로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거 스틴을 비롯한
정통적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객관적인 신앙의 지식을 완전하게
주셨다는 전제를 신앙으로 은연 중 받아들여 왔다. 반틸의 말대로 두
종류의 전 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초자연을 부정하는 자연
과학의 상대성을 안 고 들어가는 전제보다는 계시의 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전제가 훨씬 논리적인 것 으로 된다. 즉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완전한 것이고 그러기에 거 기 기록된
사건들은 일어난 그대로를 기록했으며,역사는 앞으로도 기록된 대로
일어나고 또한 기록된 대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 체적인 부활의 역사성은 그러한 계시의 사건의 중심이요
또한 해석의 중심이 되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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