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남을 진의 충성 (계 2:10-)
고려 공민왕 때에, 의령 사람 남 을진은 참지 문하부사로 있었다. ?일찌기 정 몽주 또는 길 재와 같은 현인과 도의의 교제를 하고 있었는데, ?고려조의 왕씨 정사가 어려워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사천 땅으로 내려가 ?살았다. 이 성계가 혁명하여, 등극한 후, 을진을 옛 친구라 하여 편지로 ?초빙했다. 그러나 을진은 "굴 속에서 늙어 죽기로 맹서했노라" 고 사양의 ?답장을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 이 성계는 크게 탄식하며, 이어 ?사천백으로 봉했다. 그러자 을진은 "내가 산에 들어 왔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때문에 이런 일을 만났다" 고 하고는, 곧 감악산 속으로 들
어가 종신토록 사람을 보지 않다가, 마침내 그 산속에서 죽었다. 후에 ?사람들은 그 굴을 남선굴이라 하고, 그 앞에 그의 상및 수절의 기사를 ?새긴 돌을 세워, 후세에까지 그 뜻을 전했다. 아무 보상도 없는 일을 ?위해, 다만 임금을 위해서는 충성해야 한다는 구래의 사상 때문에 그렇듯 ?충성한 이들이 있었다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을 뿐 ?아니라, 또 면류관까지 약속해 주시는 주님을 위해, 신자는 얼마나 ?충성해야 할까?
김 동인 <사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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