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조회수 : 1303    / 등록일 : 2006-10-25   / 출처(저자)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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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소설 이어쓰기`

이제 갓 고등학교에 발을 들여 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대고 `논술은 가르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지 석 달이 되었다. 가르칠 수 없다는 선생이 한 짓이라곤 쉬지 않고 자극을 주는 일. ‘이래도 생각하지 않을 거냐?’며 바늘로 콕콕 찌르며 괴롭혀 왔다. 이제 몇몇 아이들의 흥분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제 푸는 일에 올인 하느라 그간 묵혀두었던 여분의 뇌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랑이 그들의 글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소설 이어쓰기. 선생이 먼저 쓰고 나서 암시만을 주고 아이들에게 이어 쓰게 하였다. 이 나라 리더들이 이 아이들 정도만 여분의 뇌를 굴릴 줄 알아도 세상은 좀 더 평안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문제는 결국 교육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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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는 고 1이다. 공무원 아버지를 둔 명수는 고등학교에서 새로 사귄 태호와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태호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명수 말고는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다. 명수와 어울리면 대체로 돈을 태호가 부담했지만 태호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용돈이 뻔한 명수로서는 태호와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서도 금전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는 태호가 좋았다.

한번은 태호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태호는 외아들이지만 집에는 여분의 방이 두 개가 더 있었다. 최근까지 누나와 한 방을 쓰느라 창피해서 친구들도 집에 데려오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니 명수는 태호가 한없이 부러웠다. 태호는 한국의 대학 진학이 목표가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태호 아버지는 고등학교부터 미국의 사립 고등학교를 나와야 유리하다고 하시며 마땅한 미국 사립학교를 물색하고 있다고도 한다.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친구와 사귀면서 명수는 짜증이 부쩍 늘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뭣 같은 교육현실에서 쓸모도 없을 것 같은 공식을 외우며 별로 좋지도 않은 대학을 가기위해 벌레처럼 공부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한심했다. 자신도 태호 아버지처럼 돈 많은 부모를 만났다면 신나고 흥미진진한 10대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명수는 우연히 태호의 아버지도 자기 아버지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스카이 대학은 아니지만 아버지 때만 해도 지방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지방 국립대학이었다. 명수는 태호의 아버지는 당연히 서울대 아니면 연.고대를 나온 줄 알고 있던 터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가 지방부처의 공무원으로 빠듯한 월급에 살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서울의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같은 대학을 나오고서도 평생 전셋집을 돌다가 최근에서야 코딱지만 한 아파트를 마련한 자신의 아버지와 서울서 가장 비싸다는 지역, 그것도 운동장만한 아파트에, 자식을 미국의 명문대학 아니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보내주려고 하는 태호 아버지를 비교하니 자신은 너무도 운이 없는 놈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아버지와 식사를 하면서 태호 아버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이렇게 부자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아버지도 아버지와 대학 동창이시더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식사만 계속하셨다. 모르시는 눈치였다.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잘 나가는 동창도 모르는 아버지가 더욱 한심스러워 보였다.

기말고사 성적은 엉망이었다. 내신비중도 높아진다는데 마음이 갑갑했다. 엄마와 이미 한바탕 끝낸 터라 저녁은커녕 아버지가 돌아오셨는데도 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 시험을 망쳐놓고 되레 성을 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아들이 내신이 안 좋아서 대학을 못가도 상관이 없다는 건지, 아버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형편상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거겠지’라고 생각이 미치자 마음은 더욱 갑갑했다.

다음 날 태호를 불러냈다. 방학도 했으니 같이 영화나 한 편 때리자고 의기투합했다. 태호도 기말고사 성적이 별로였지만 걱정하는 기색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 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명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태호에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너는 좋겠다. 시험을 못 봐도 갈 곳이 있으니, 아버지 잘 만난 놈이 최고라니까?”

내성적인 태호의 낯빛이 변했다. 콜라를 빨던 태호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친구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명수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좀 잘못 된 것 같네.”

그 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명수는 사과하려고 태호에게 몇 차례 전화 했지만 태호는 무뚝뚝하게 전화만 받을 뿐 명수를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