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용기있게 말하기가 치유의 출발

  조회수 : 951    / 등록일 : 2006-10-25   / 출처(저자) : 국민일보


성폭력 용기있게 말하기가 치유의 출발

내달 부산서 첫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
그림·시 등 작품 전시… 성의식 교육도 실시

`서로의 아픔에 대해 느끼고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걸 얘기함으로써 속이 시원했다. 맺힌 것들을 자세히 말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모든 걸 다 말한 것 같다. 즐거웠다. 우리 두 친구의 경험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서로 얼굴 보며 그 사람들에게 욕도 하면서 오래된 친구같이 느껴졌다. 공감대가 형성되어 모든 걸 다 말할 수 있는 친구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집단상담에 참여해 직접 쓴 글의 일부다. 수치심을 유발해 입 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범죄, 바로 성폭력이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에겐 자신의 상처에 대해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내달 14일 열리는 `성폭력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부산성폭력상담소는 10월 14일 부산 금정구 남산동 동래병원 부설 소극장 예마당에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성폭력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개최한다.

`생존자`란 성폭력의 범죄, 재난에서 살아난 사람을 의미한다. 성폭력 피해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라는 말이 피해의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에서 비롯됐다. 소극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인 존재로 상처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생존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사)부산성폭력상담소 지영경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의 생존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 스스로가 죄인인 것처럼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며 "피해의식을 딛고 사회에 당당히 말을 할 수 있고,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긍정적인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 왜 하필 `말하기`일까. 지 사무국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로부터의 협박, 사회적인 인식, 자존심 때문에 성폭력 사실을 드러내거나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억눌려 있고, 이 억눌림으로 인해 속병이 든 경우가 많다"며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말하기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치유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런 말하기 대회는 호주 미국 등지에서 15년 전부터 `스피크 아웃 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행사 참가자들은 낮에는 성폭력의 경험을 서로 나누고, 밤에는 시위를 하면서 웃고, 떠들면서 비슷한 상처를 서로 어루만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3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제 1회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처음에는 비공개로 시작되었으나 지난 8월 열린 올해 4회 대회부터는 성균관대 운동장이라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열렸다.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피해자들의 희망을 담은 그림이나 시, 찰흙 작품들과 가해자들에게 고하는 글도 전시된다. 하지만 행사를 어느 선까지 공개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회에 나갈 피해자들이 참가자 범위를 스스로 정할 계획이다. 성폭력상담소는 행사 특수성을 감안해 대회 진행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성의식 교육도 실시한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지난 92년 개소 이래 총 상담건 수가 3만 여건에 이를 정도로 부산에서 성폭력 사건의 발생빈도가 높다고 밝혔다.

(사)부산성폭력상담소 이재희 소장은 "성폭력 사건이 3분에 한 건씩 발생할 정도로 성폭력 피해자가 많지만 이들 대다수가 억눌림 속에 분노와 절망으로 몸부림치고 있다"며 "이번 대회로 피해자 스스로가 마음 속 분노와 상처를 쏟아내며 서로에 대한 지지를 통해 힘을 모으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51)558-8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