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들/ 이수정

  조회수 : 1059    / 등록일 : 2006-10-27   / 출처(저자) : 온누리교회


믿음의 사람들/ 이수정

1882년 9월19일.
제물포항을 떠나는
배 위에는 일본
수신사 일행과 함께
이수정도 타고
있었습니다.


1882년 9월19일.제물포항을 떠나는 배 위에는 일본 수신사 일행과 함께 이수정도 타고 있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위기에 빠진 민비를 구한 공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가 바로, 말씀에 목마르던 우리 민족을 위해 성경을 번역한 주인공이었습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에는 친구 안종수가 한 말이 맴돌고 있었는데.
친구: "예수교는 사교가 아니라네.산상수훈만 봐도 평등주의 사상이지 않는가.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 피조물이며 형제라는 거야."
이수정: `도대체 기독교가 뭐길래 그 친구가 그렇게 미쳐
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성경을 한글로 번역,초기 한국기독교 선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장본인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코하마항에 도착한 이수정은 안종수가 소개한 농학자
츠다 박사의 집을 방문했고. 기독교인이었던 츠다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츠다: "이 선생님,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진리는 예수
밖에 없습니다."
이수정: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그 예수라는 자가 어떤 자이길래 이 세상을.구원한다는 말입니까?"
농학을 논하고자 했던 자리는 기독교를 토론하는 자리로 바뀌었고, 이수정은 츠다 박사로부터
한문성서를 얻어 성경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1883년,일본에 건너온 지 7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같은 해 5월, `일본 전국 기독교도 대친목회`에 참석해
최초의 한국어 공중기도로 기록되는 대표기도를 합니다.
이수정: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만이 참 신이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이수정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최선의 방법이 한글로
성경말씀을 담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일본 주재 루미스 목사가 그에게 한국말로 성경을
번역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만큼 조선선교를 위해 한글성경의 제작이 시급했던 것이었습니다.

한문문장에 `이두`식 `토(吐)`를 단 이 책은, 이른바 `현토한한신약성서`. 양반과 평민을 모두 겨냥한 합리적인 번역본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번역된 것이 마가복음.
이 책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초기 한국 복음선교사들이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초기 공식적인 한글성서의 역할을 했고 이후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조직된 성경번역위원회에서 간행된 한글성서의 기초가 됐습니다.

이후 이수정은 신약성서마태전,신약성서마가전,신약성서
누가전,신약성서요한전, 신약성서사도행전 등을 번역했고, 이 외에도 동경에 거주하는 한국유학생들과 교포들을
전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수정: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참 진리이십니다."
그 결과 1883년 가을에 이수정이 주재하는 한국인 주일학교가 발족됐고, 이듬 해에는 한국인 교회가 창립돼 선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쳐 미국교회에 한국의 선교사 파송 청원서를 보내기도했고 한국선교에 대한 논문도 여러 차례 기고했는데, 그만큼 한국의 복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 뜨거웠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1886년 5월, 이수정은 본국으로부터
귀국 종용을 받고 귀국길에 오르지만, 곧바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지만, 그는 이 땅의 복음화와 한글성경번역의 개척자로서 순교자적인 역할을 감당했고, 그가 남긴 말씀의 씨앗은 실로 암흑 속에 갇혀 있던 이 땅을 밝혀주는 등불이었습니다.


약력
1883 야스카와[安川亨] 목사에게 세례
1883 도쿄 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 강의
1883 루미스 목사와 함께 성경의 한국어 번역에 착수
1885 언더우드 ·아펜젤러 두 선교사에게 조선어 교육

주요번역성경
《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의 4복음서》,《사도행전》,
《마가전복음서 언해(諺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