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생애와 박해
루터는 1481년 11월 10일 맨스필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광부였으며, 루터는 어려서부터 글을 배웠고, 1501년에 에르푸르트(Erfurt)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논리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20세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윤리학 그리고 다른 철학의 일면들을 강의했다. 후에는 부모의 권유로 법률을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들을 지나다가 번개가 치는 바람에 그가 땅에 쓰러졌고, 함께 걷던 동료는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그는 세상과 단절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 수도원에서 우연히 라틴어 성경을 발견해 읽다가 성경의 너무 많은 부분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루터는 에르푸르트 수도원에서 성직자 서원을 하고서 1507년에 첫 번째 미사를 인도하게 되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거기서 같은 성직자였던 노신부에게서 죄들의 사함에 대한 말을 듣게 되었다. 즉 모든 사람들의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그는 힘을 얻었고, 바울이 그렇게도 여러 번 언급했던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자신이 과거에 배웠던 성경해석이 헛된 것임을 알았고, 지속적인 기도와 믿음을 통해 그 교리를 더욱 확고히 해 나갔다.
1512년 일곱 개 수도원 성직자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루터는 로마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에서 성직자 제도의 실상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는 그 문제가 해결되자 비텐베르크에 돌아와 신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자신이 받은 소명에 더욱 전념하게 되었다.
루터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열심히 돌이켰고, 죄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값없이 사해졌으며, 우리는 이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혀주었다. 그의 삶은 그의 말과 일치했으며, 그의 거룩한 삶으로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특히 그는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열중했으며, 그러던 중 로마카톨릭이 1517년에 면죄부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레오 10세는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할 계획으로 유럽 전역에 면죄부를 발행했던 것이다. 이 일은 비텐베르크에서 반발을 샀으며, 특히 루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반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517년 어느 날 밤, 루터는 면죄부에 대한 논문을 정리해서 교회에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루터의 제안들이 발표되자마자 도미니칸 수도사인 테첼이 그것에 직접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수도사들을 선동해 그를 강단에서 추방시키고 이단으로 규정했으며, 그의 논문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루터의 적들은 그에게 점점 더 심하게 반대했으며, 마침내 루터는 레오 10세에 의해 이단으로 고소되었다. 그는 교황에게 편지를 써서 면죄부에 대한 자신의 제안들을 설명해주었다.
황제 막시밀리안은 루터의 견해들을 저지시키는 데 있어서 교황만큼이나 단호했다. 로마에서 자신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졌음을 안 루터는 로마에 가지 않고 독일에서 공청회를 갖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루터가 로마에 가는 것을 선제후 역시 반대했다. 결국 교황의 사절로서 교황에게 위임받은 권세로 추기경 가레탄이 독일에서 공청회를 갖게 되었다.
1518년 루터는 선제후에게 받은 서신을 가지고 루터 자신의 안전을 확인한 후 오그스버그에 갔다. 그러나 논쟁보다는 추기경의 막강한 권력이 더 무서운 상대였다. 그는 거기서 출발하기 전에 교황에게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으며, 비텐베르크에서 같은 교리를 계속해서 가르쳤고, 모든 종교 심문관들에게 자신과 논쟁하자고 도전장을 던졌다.
루터의 교리는 계속 퍼져나갔다. 그는 국내외적으로 지지를 받았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1519년 레입식에서 존 엑키우스와 논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양쪽에 적대감만을 증가시켰을 뿐이었다.
루터는 양 진영에서 행해진 성찬식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미스니아 주교는 그 책에 저주를 퍼부었다. 루터는 새 황제와 독일의 주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했고, 엑키우스는 로마로 가서 루터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일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루터의 적들과 교황 레오의 집요함으로 인해, 마침내 루터는 공식적인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황제와 독일의 모든 적들 앞에서 계속 진리를 고수했고, 자신을 변호하며 그의 적들에게 답변했다.
많은 평민들과 기사들, 백작들, 남작들, 성직자들이 그를 방문했다. 그는 보름스의 영주들 앞에 섰을 때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 “황제의 질문에 답변하라. 네가 인정해 왔던 너의 모든 책들을 여전히 지지하겠는가? 아니면 그것들을 포기하고 굴복하겠는가?”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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