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의 의미와 교회교육
송남순(교수, 한일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
월간「교육교회」95.11월호(기독교교육연구원 제공)
교육은 형식적 장소에서 짜여진 교과과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비형식적 장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와 같은 비형식적 교과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별히 종교교육은 많은 부분이 비형식적 교과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가장 크게 차지한 비형식적 교과과정이 바로 절기를 통한, 교회력을 통한 교육이다. 온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지키는 절기 명절은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 환경 속에서 신앙공동체의 일체감을 가져오고 가치와 전통을 심을 수 있는 삶을 통한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의 명절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보편화되고 교회공동체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쳐온 명절은 바로 성탄절이다.
매해 한해의 마지막인 12월이 되면 이땅위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들이나 신앙하지 않는 자들이거나에 상관없이 한해의 마지막을 정리하려는 생각과 함께 성탄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고 마음이 설레게 된다. 특별히 근래의 성탄절은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에서보다는 백화점이나 상가를 증심으로 상업적인 전략과 함께 의미보다는 서구적인 화려한 상흔으로 오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아직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추수감사절도 지키지 않았는데, 세속도시에서는 장사하는 크리스마스로 바쁘게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함께 편승하여 사고 파는데 바쁜, 장사하는데 바쁜 성탄 준비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이 기간 마저도 내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의 관심 속에서 나의 탐욕을 채우는데 바쁘다. 이러한 사회현상 속에서 어떻게 성탄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해 갈 수 있을까가 교회의 교육의 과제이다. 교회교육 속에서 단지 하나의 행사를 치루는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신 정말 놀라운 비밀이 담긴 기독교의 본래적 의미를 부여하는 교육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성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성탄으로 이어지는 대강절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중요하게 되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대강절의 의미를 찾아보자.
대강절(ADVENT)은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 불리는 성탄일 전 4주일로 ‘오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절기에는 2000년전 베들레헴 구유에 성육신하신 아기 예수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 의미를 되살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소망가운데 구체적인 성육신의 삶을 사는 기간이다. 그럼 오늘 우리는 베들레헴 구유에 성육신 하신 아기 예수님의 의미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단지 누가복음 2장에 나타난 탄생 이야기에 기초해서 구유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아기예수가 주는 의미 속에서 대강절의 현대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본문에서 보여 주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구유에 뉘었다는 데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 본문은 사관에 있을 곳이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호적하러 온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인 것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이해되어질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이러한 당연한 것 같은 사실 때문에 인간의 악한 본성이 정당화 되어지는 경우는 허다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즉 ‘나`편리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에 ‘너’의 형편과 처지가 전혀 무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가 헛간에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세상에서 첫 울음을 터뜨린 사람의 아들이 구유에 뉘어졌는데도 자신의 방으로 옮겨 줄 너그러움이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구유에 누워 있는 사람의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 너그러움이 없었기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뜻의 실현은 구유에 누인 사람의 아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너’에 무관심한 결과는, ‘너`에 장님이 된 결과는 큰 기쁨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복음에 귀머거리를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그 기쁨의 소식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에게 보여졌고, 들을 귀 있는 자들,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다. 그래서 그 기쁨의 소식을 받은 그들이 또한 평화의 소유자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구유의 사람의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기뜸을 간직한 자들이 된 것이다.
나는 가끔 성탄절 전야에 또는 대강절기간에 어수선한 마음으로 성탄절 준비를 하구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우리끼리 모여서 별 성탄의 의미가 없는 커다란 츄리를 세우고 아름다운 전구로 환한 아름다운 불을 밝히고 우리끼리 모여 산타의 선물을 주고 받고 우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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