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침례교 신학 역사
제목 : <특별기고> 침례교 신학의 역사적 발전
자료원 : 뱁티스트 피영민 침례신학대학
필자는 이미 [북한의 실천] 제14집에 동일한 제목으로 필자의 생각을 발표
한 바가 있으므로 이 글은 사실상 동일한 제목에 동일한 결론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좀더 대중적이고 좀더 많이 회람되고 있는 [뱁티스
트] 지를 통해서 좀더 평이한 표현으로 서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
에 다시 졸필을 들게 되었다.
"침례교회는 신학이 없다"는 표현을 해석하기에 따라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악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침례교회는 획일적인 신앙을 강요
하지 않음으로써 같은 침례교회라는 우산 안에 다양한 신학을 인정하고 사
소한 신학의 차이로 서로 핍박하거나 분파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
용한다면 필자도 침례교회는 신학없는 교파라고 말하겠다. 신학의 차이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거부하는 것이 침례교회의 독특한 자유정
신이기 때문이다. 또 사소한 신학차리로 수백 수천 갈래로 갈라지는 현실을
우리는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침례교회는 이런
분열정신을 거부한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아무런 신학적 체계도 없고 신앙
하는 이야기나 가진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필자는 단연코 신학없는
교파가 침례교회라는 표현을 거부하겠다. 골조없는 건물이 어떻게 설 수 있
겠으며 뼈대없는 인간이 어떻게 행보를 하겠는가? 신학이 단순히 지나간 역
사 속의 이야기고 지나간 조상들의 삶이라면 우리는 이야기나 노닥거리고
조상들의 삶에다 영웅적 색칠을 하면서 살아야 하겠는가?
신학은 목회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영역이다. 아무리 훌륭한 삶을 살고 역
사에 남을 이야기를 남긴 인물이라도 그의 신학체계가 비성서적이면 우리는
그를 이단자로 부른다. 가슴은 뜨거울 지라도 머리는 잘못된 사람이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가슴 뜨겁고 삶이 훌륭했던 아리우스주의자도 있었고, 옹나
물을 불살라 거짓된 교리르리 온 세상에 유포한 가톨릭 선교사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삶도 중요하고 남긴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가 세운 교리적 신학
은 더욱 중요하다. 사도바울의 서신들은 먼저 교리를 말하고 그후 삶을 말
한다. 교리와 삶은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로 연결된다. 교리는 아무래도
괜찮고 삶만 중요하다는 교훈을 성서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체계적 신
학과 논리적 교리를 무시함은 성서를 무시하는 사상에서 비롯된다. 체계신
학이 쓸데없다면 신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논리적이라고 해서 다 진리는 아
니다. 그러나 진리는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서의 진리를 체계
화하고 논리화하는 작업은 기독교회가 지난 2천년간 꾸준히 수행해온 귀중
한 작업이었다.
목회자의 체계 신학이 다르면 설교 내용이 달라지고 교육내용에 차이가 난
다. 교회 행정이 달라지고 복음 전도의 메시지에 차이가 난다. 체계 신학이
없는 목회자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지 그의 신학이 성서적이냐 비성서적이
냐, 논리적이냐 비논리적이냐 하는 구분이 있을 수 있을 뿐이다.
필자는 지난 해에 홍콩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홍콩 시내에는 많은 빌
딩들이 있지만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복도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비가 오
는 날씨에 우산도 없이 이 건물 저 건물을 마음껏 다니며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침례교회의 신학을 마치 홍콩의 건물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큰
골조를 가진 건물들이 있어도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홍콩처럼, 다양한
신학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치례교회의 공통성 있는 한 통로를 이용하고 있
는 것이다.
침례교회의 공통성은 다름아닌 교회론에 있다. 유아세례를 부인하고 신자
의 침수침례만을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라고 믿는다. 한 국가에 한 종교를 설
정해놓고 그 종교만을 강요하며 그 종교를 따르지 않는 자를 죽이고 핍박하
는 짓은 "짐승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짐승이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
짓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영역을 마귀에게 내어 준 것은 아니다.정치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영역으로서 간주하고 정치가들도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기관으로 보았다. 단지 정치
가의 영역이 종교의 영역과는 다른 것이므로 정치가 본연의 영역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침례교회는 현실도피적인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를 펴나갈 때는 분명히 일어
나서 예언자적 기능도 수행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의 주동세력이었던 올리버 크롬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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