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종말론 핵
제목 : <특별기고> 종말론과 핵문제
자료원 : 뱁티스트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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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배ㅌ]을 [뱁]으로 고쳐사용합니다. - KCM -
베드로후서 3장을 중심으로
Ⅰ. 서론
한국교회는 지난 몇년 전까지 소위 시한부 종말론에 관한 논쟁으로 홍역
을 치른 바 있다. 특정한 날을 주의 재림의 날로 정해 놓고 큰 물의를 빚
었었다. 그 특정한 날을 재림의 날로 여긴 근거는 성경의 해석으로부터
나왔거나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 아닌 예언은 공수표로 돌아가 버리고, 시한
부 종말론 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 아닌 지도자는 사기 혐의로 투옥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시한부 종말론 운동은 사실 특정 집단에게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었고 한국교회 전체가 직접, 간접으로 참여한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이루는 데에 조금은 공헌하는 듯보였
다. 그러나 이 운동이 공수표로 끝나는 바람에 그 부정적인 여파는 시한
부 종말론을 명시적으로 설교하던 교회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미치게 되었고, 작금의 한국교회가 살아 있는 메세지와 잇슈를 잃은 채
침체상태에 빠지도록 하는데 공헌하였다.
그후 한국교회에는 종말론을 강조하는 설교를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고
종말론은 한국교회의 신학과 삶에 있어서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러
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종말론적 환상
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세지의 핵심이었고, 초대 기독교교회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으며 2천년 기독교교회의 근저에 깔려 있는 추진력이기 때문이
다. 특정한 날을 재림의 시기로 설교하는 등 왜곡된 종말론이 성행한다고
해서 성서적이고 건전한 종말론을 아예 포기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가 기
독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종말론은 신학의 여
러 논제를 뒤에 잠깐 논하는 에필로그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신학과 신앙
의 모든 잇슈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논제이며, 기독교 변증학이나 기독교
세계관의 정립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종말론을
빼고는 기독교 신학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기독교인의 삶의 의미와
소망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는 성서적인 건전
한 종말론의 메세지를 회복하고 활력있게 그것을 전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견지에서 건전한 종말론을 향한 전망을 제시하는
데에 있다. 특히 최근의 북한 핵문제가 남한 국민들 뿐 아니라 주변 동아
시아의 여러 나라에 위기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을 기독교인으로서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도 이 글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베드로후서 3장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이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은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다음에는 재림의 양태에 대해서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펴보고, 종말론이 기독교인에게 가지는 실존적 의미
가 무엇인지를 탐구한 후에 역사의 주인되시는 주권자 하나님에 대한 우리
의 신앙이 창조나 구원의 문제뿐 아니라 종말론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함을 밝히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핵전쟁의 위기 앞에 서 있
는 기독교인의 각성과 소망과 확신의 이유를 천명함으로써 마치게 될
것이다.
Ⅱ. 재림의 시기
신약성경이 쓰여지던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 세대가 끝나기 전에 주님이
다시오실 것이라는 신념이 확산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대가 지나가도 주님
이 재림하지 않게 되자 교회 내에는 많은 실망과 좌절이 생겨났다. 이 상
황이 베드로후서가 쓰여지게 된 이유였다. 당시에 많은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때와 같이 그냥 있다(4절)”고 하면서 재림 자체를 부정
하게 되었다. 특정한 날이 주의 재림의 날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이나, 재
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더욱 사악한 문제이다.
이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답변은 두가지였다. 첫째,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8절)는 것이며, 둘째는 재림의 연기의 유일한 이유
는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9절)”는 것이었다. 인간의 좁고 짧은 전망
으로는 더딘 것같지만 하나님의 신비한 뜻과 경륜의 전망에서 볼 때에는
더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요, 인간편에서 볼 때에 재림이 더디 오는
것은 회개의 기회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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