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이웃일까

  조회수 : 915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활천



주제 : 이웃 선 자신감
제목 : <산샘칼럼> 누가 내 이웃일까?
자료원 : 활천 백수복주간
발행일 : 95년 06월 01일

리무진버스가 관광객을 가득 싣고 선한 사마리아 여인숙 자리에 세운 간이
박물관에 도착한 것은 어둠이 막 깔리려는 듯이 스산한 날씨의 초겨울이었
다. 박물관 내로 들어가기 전에 버스 속에서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던 문제
를 다시 꺼내서 되새기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친아랍정책으로 전향하
고 있어서 이스라엘과 국교가 단절되고 양국의 영사관이 철수되고 있었으며
버스에 가득찬 관광객 중에 한국인이라고는 필자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만
일 사고라도 나면 어떻거나 겁을 집어먹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인숙 자리
에 당도하여 버스에서 하차 한 것이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9:30-37)가 떠올랐다. "누가 강도만난자
의 이웃이 되겠느냐?"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누가 내 이웃이 되어 줄까
"하고 생각하니 참으로 소름이 끼칠듯이 오싹한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듯
하였다.

사마리아인의 주장에 의하면 "사마리아'란 사메림(율법을 지키다)에서 전
래되었으며 사마리아인은 엘리 때 실로에 신전 건축을 반대하고 그리심산을
택했기에 여호와께 충성한 후예라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에스라-느헤미아의
예루살렘 재건 이후부터 이들과의 교류와 혼인을 금하여 예수님 당시까지도
그들과는 상종하지 않았다는 역사를 인식하면서 필자에게는 야릇한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하였다.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면 우리 한국인이야말로 더 더욱 그런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유대인으로부터 무시 당한 사마리아인이 선행을 함으로 참다운 이
웃임을 예수님으로 인정받았다는 교훈 속에는 현대적인 진리가 내포되었음
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국교도 단절되고 버스에 가득찬 외국인 가운데는 필자에게 선
행을 베풀만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인식은 참으로 무서운
자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
각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들 때는 필자의 마음 속에 뿌듯한 만족함이 부풀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할 때는 비참해지고 비겁해 지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
가 용솟음치듯 불쑥 튀어 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