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바다의 풍랑

  조회수 : 911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활천



주제 : 갈릴리 풍랑 시련
제목 : < 산샘칼럼 > 갈릴리바다의 풍랑
자료원 : 활천 백수복 본지주간
발행일 : 95년 02월 01일

그해 갈릴리 바다의 가을풍경은 아름다웠다. 관광객을 가득 실은 리무진
버스가 요단강을 도강하는 순간 관광객들이 북쪽 차창으로 우 - 몰려가면서
버스가 기우뚱 하여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요단강의 아취형 교량
을 배경으로 해서 잔잔한 갈릴리 바다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관광
객들의 호들갑들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요단강에서 흐르는 물로 이루어 졌다고 해서 단물호수로도 불리우며 몹시
맑고 푸르러서 유대인들의 음료수를 제공하는 젓줄 바다다. 사철 눈을 머리
에 쓰고 우뚝 서 있는 헬몬산과 레바논의 산, 들에서 흐르는 물을 모은 요
단 강이 바다의 동북으로 들어와 서남으로 흘러 서해를 향해 내려간다.

필자가 성지순례한 12월초의 갈릴리 바다도 진한 코발트색의 잔잔한 바다
여서 그 아름다움은 비길데 없었다. 갈릴리바다의 정경이 맑은데 더 더욱
성지순례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 같았다.

구약시대는 긴네렛(민 34:11,수 12:3)이라고 일컬어서 히브리말의 거문고
를 뜻하였는데 남북 20KM에 동서 12KM의 갸름한 모형의 거문고 형을 이루었
기때문이다.

이제 막 갈릴리 바다의 유리 같은 표면을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범선의 모
습이 시야에 들어 왔을 때에 "저 잔잔한 바다도 성난 파도가 일어난다"고
하는말에 동의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 당시 제
자들이 항해 할 때에 풍랑이 일어나 혼비백산 했었따는 기록이 있다(눅
8:22-25). 아니 예수님을 동행했던 제자들도 풍랑을 만난단 말인가?

필자가 투숙한 자이온호텔(Zion Hotel) 에 돌아와서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계속 연상되어 왔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도 풍랑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인가?

사실 신앙새활 자체가 만사형통은 아니지 않는가? 신앙생활 하는 중에도
시련은 얼마든지 만나게 마련이다. 요사이의 입시철에는 교회마다 내 집 아
이들도 문제이지만 교회 안의 고등학생들 그리고 교회 중진들의 자녀들 입
시 문제 때문에 말도 함부로 못하고 눈치를 살피면서 참으로 숨을 죽이며
한때를 보내야만 한다. 왜 신앙이 돈독한 성도들의 자녀가 입시에 낙방하여
야만 하는가? 신앙인도 풍랑을 만나는 경우가 어찌 입시문제 뿐이겠는가?
사업도 시작만 하면 다 번창하는 것이 아니고 파경을 맞기도 하며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비극을 맞는 경우도 성도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그래서 야고보선생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고 (약 1:2), 시험을 참는자가 복이 있다고도 하였다 (약 1:12).

성도들도 시험을 받는 것은 불신자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함께
당하는 시험이지만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 불신자와 달라야만 한다.

불신자들은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온갖 수단과 방법
을 다 동원한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절망하여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고 까지 경고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
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는 말씀을 믿고 끝까지 절대자이신 하나님
께 매어 달려 간구함으로 시험을 이기게 된다.

그날밤 필자는 깊은 잠에 곯아 떨어지기 전에 풍랑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
을 깨워서 풍랑을 이겼다는 말씀을 깨닫고 시험이 깊을수록 깊은 잠에서 깨
어나 주님에게 기도하여야 함을 터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