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맛살은 게살이 아니다

  조회수 : 1065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활천



주제 : 가짜 착각 망각 사이비
제목 : <이승우에세이> 게맛살은 게살이 아니다
자료원 : 활천 이승우소설가 서울신대졸
발행일 : 95년 07월 01일

나는 한동안 '맛살'이라는 식품을 알지 못했다. 지금이야 김밥으로, 샐러
드로 여느집 식탁에나 흔하게 오르는 식품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렇
지가 않았다. 상당히 귀한 먹거리로 인식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하
기야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온 것도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시골 출신인데다가 집안이 부유한 편이 못되었던 나는 어린 시절에 그
맛살이라는 것을 거의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맛을 알 턱이 없었다.
우리들의 입은 길들여진 맛이 아니면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법. 지금도 나
는 웬만해서는 맛살에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다. 맛살을 봉지째로 손에 들
고 다니며 뚝뚝 떼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래서 가끔 신기하다. 어디
맛살 뿐이겠는가. 나는 냄새도 맡기 싫어 하는 치즈를 내 아들놈은 입에 물
고 산다. 자식이 아비의 식성까지 닮는다는 말은 이제 시효가 지나 버렸는
가.
물론 아이들을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놈들의 입에 그것들을 물려
준 것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주변에 몰려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지가지 편리한 가공식품들의 공세에 너무 안이하게 항복한 결과이다. 우
리의 아이들은 커가면서 핫도거와 햄버거며 피자 따위의 입맛이 길들여진
다. 가히 입맛의 국제화라고 해야 할 이 식생활의 변화 속에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패권주의를 읽어야 하는 일이 슬프다.
각설하고, 맛살이 게맛살의 준말이며 게살로 만든 가공식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놀랬었다. 도시에 편입하고 한참 지나서였는데, 게맛
살의 쫄깃쫄깃 씹히는 감촉도, 자극적인 향료 냄새도 내 입이 기억하고 있
는 게 살은 아니었다. 나는 바닷가에서 성장했고, 따라서 게의 맛에 익숙해
있었다.
이게 게 살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물었었다.
그래, 이게 게 살이야, 하고 도시에서 성장한 그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나는 한동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살과 맛살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했다.
나에게 게맛살에 대해 설명해 준 그 친구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였다. 이제 나는 안다. 어째서 그 가공 식품의 이름
이 '게살'이 아니라, '(게)맛살'인지.
'게맛살'의 포장지에 적혀 있는 작은 글씨의 이 짧은 문장에 주목한 적이
있는가.
<00 게맛살에는 게살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구는 얼마나 유머러스한가.
게맛살에는 게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살이 아니라
게맛살이라는 것이다. 거기 들어 있는 것은 그르면 무엇인가. 그것은
엉뚱하게도 명태살과 게의 맛을 내는 향이다. 명태살에 향료를 섞어넣고
게맛살이라고 이름 붙여서(아주 사기는 아니다. 게살이 아니라 게맛살이라
고 했고, 작은 글씨로나마 주원료가 명태살임을 밝히고 있으니) 시중에 내
다 판다.
장사꾼들은 소비자들의 착각과 망각을 이용한다. 게맛살은 게살로 착각되
고, "게살이 들어 있지 않다"는 문구를 읽으면서도 게맛의 향료에 미각이
둔해지고 무신경해진다. 그것이 게살이 아니라 명태살이라는 지식은 너무
쉽게 망각된다.
본질과 상관없는 것이 색깔과 모양새만 그럴 듯하게 갖춰가지고 본질인양
행세한다. 글로 쓰여졌다고 모두 문학이 아니고, 무대에 올려졌다고 모두
예술이 아니다. 경계선이 모호해진 틈을 타서 그럴듯한 가짜들이 진짜 예술
품, 진짜 예술가들을 대신하는 현상을 보면서 예술의 말세를 절감하는 요즘
이다. 문학과는 상관없는 욕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이비 문학들 때문에 문
학이 죽고,예술을 빙자해서 세속적 이득을, 그것도 한탕주의적으로, 취하려
는 자들에 의해 예술이 고사한다.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른 것을 사이비라고 한다. 그런 뜻
에서 현대는 사이비의 시대다. 우리 사회는 사이비들의 무도장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득실거리는 사이비들이 당장의 눈가림으로 진실을 호도하려는
시도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는 흔하게 더럽혀져 왔다.
성인은 없고, 성인 맛을 내는 사람만 흔하다. 의인의 냄새를 피우는 사람
은 널렸는데, 정작 의인은 없다. 등불이며 소금이기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
의 숫자는 엄청난데, 세상은 더 어두워져가고 더 부패해져간다.
왜 그럴까. 그 성인, 그 의인이 겉모양의 성인, 겉모양의 의인이기 때문이
다. 우리의 종교들이 겉모양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종교가
기독교 본질과는 상관없거나 또는 드러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아주 사소한
장식에 불과한 껍데기를 중시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