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조회수 : 794    / 등록일 :    / 출처(저자) : 활천



주제 : 문명 자각 외형 포장
제목 : <이승우에세이>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자료원 : 이승우소설가 서울신대졸
발행일 : 95년 06월 01일

지구촌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대형 사고와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오클라호마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로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들이 죽고 실종되고 다쳤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인체에 치명적인 가
스를 지하철에 살포한 사이비 종교 집단 때문에 온나라가 소란스럽다. 우리
나라라고 예외일리 없다. 다리가 무너져서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
더니 얼마 전에는 대구에서 발생한 가스 포발사고로 더많은 목숨들이 희생
되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과거에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는 사고의 가능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완전한 존재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재지변을 제외하면 과거의 사고는 그 규모나 성격에 있어서 오늘날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문명의 진보는 비극의 규모도 확대시키는 걸까. 과학문명의 진전과 함께
지구촌을 갈수록 좁아지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진
듯 보이지만 ,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답답하고 암울하다.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깥이 아니라 내부를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현대 문명의
진보와 발전과 안락의 안쪽에 여차하면 터지기 위해 부글부글 끊고 있는
독가스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견딜 수 없이 불안하게 한다.
불안해 하지 않으려면 그 안쪽을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껍데기
는 매끈하게 포장이 되어 있으니까.그것이 어쩌면 행복하기 사는
비결일지 모른다. 예컨대 우리의 손톱밑에 우글거리는 수억 마리의 세균들
을 보고서야 어떻게 잠이나 편안하게 자겠는가. 우리는 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고 산다. 문명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 정도의 처세술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손가락 밑의 세균을 방치하는 것과 현대 문명의 포장지 안쪽에서
부글거리는 독가스를 모른체하는 것은 같은 문제일 수 없다. 문명은 포장술
을 발달시켰다. 사람도 사회도 겉모양은 아름다워지고 세련되고 매끈해졌
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겉모양처럼 그렇게 아름답고 세
련되고 매끈해졌을까.
'긴급정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한 연구소에서 벌어진 뜻밖의 사고와
그로 말미암은 소동을 기둥 줄거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현대 문명의
안쪽 얼굴에 대해서 몇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 연구소는 도시로부터 멀리 떠러진 한가한 농촌에 세워져 잇는데
외부에는 농산물 연구소로 알려져 있다. 마을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고,
심지어는 직원 가운데 일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비밀리에 화학전에 대비한 유독성의 화학 제품을 실험하고 연구하고
제조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이
연구소의 건물은 연구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 힌트도 주지
않는다. 겉으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농산물 연구소다. 농산물의 품종 개
량 따위를 연구하는 기관에 대해 불안해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안해
하기는 커녕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연구소 안에서 우연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된다.
한 연구원의 실수로 그들이 만든 화학물질이 유출되면서 연구소 안을
오염시켜 버린 것이다. 연구소는 완전히 폐쇄되고, 비밀을 담당하는
정보요원들이 몰려오고 하면서 떠들썩해진다.
그런데 그 유능한 지능을 가진 두뇌들이 만들어낸 화학 물질이란 것이
이상하다. 그 물질에 노출되기만 하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리는 것이다.
갑자기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난폭해져서 옆에 있는 사람을 해치려고 한다.
요컨대 모두들 미쳐 버리는 것이다.
광기를 주입하는 화학 물질, 그로 인한 증오의 유포와 폭력의 행사,
그것이 문명의 안쪽 얼굴일지 모른다는 우려를 이 영화는 제시하고 있는
것같다. 농산물 연구소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안심들을 하고
심지어 고마워 하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을 미치게 하고 서로 증오하며
싸우다가 결국은 죽게 하는 사악한 약품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일본과 미국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은 그 나라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한 선진국이기 때문에 그 충격이 한층 크다. 인류가 지향하는 사회
발전의 모델이라는 것의 진짜 모습이 저것인가. 하는 의문과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런 반문명적인 사건"을 운운하지만, 실상은
이런 사건들이야말로 "문명적 사건"인 것이다. 이곳 저곳에서 생명을 해치
는 유독가스나 폭탄은 문명의 산물이지 자연의 산물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