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나그네 순례자 추방
제목 : <이승우에세이> 세상 안에,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자료원 : 이승우 서울신대
발행일 : 95년 05월 01일
얼마전에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다녀왔다. 사무적인 용무 같은 것이 없는
나들이 였기 때문에 마음이 가볍고 홀가분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기분은 더
할 수 없이 유쾌했다. 도로도 왕복 6차선으로 잘 닦여 있었고, 차도 많지
않아 길의 흐름이 좋았다. 우리를 태운 차는 콧노래를 부르듯 부드럽게 굴
러갔다.처음 한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한 30분쯤 달렸을까, 앞서 가던 자동차들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드
는가 싶더니 이내 서 버리는 것이었다. 도로 한 가운데까지 들어와 음료수
병과 부피 큰 과자들을 내미는 행상들이 사태의 심각함을 알려주었다. 편더
3차선이나 되던 차선이 한 개 차선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도로변에 세워진
(공사중)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아찔했지만, 우리들은 차안에 앉아
그 길이 열리기를 아주 끈기있게 기다리는 것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고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고 싶은 꿈이야 누군들 못 꾸겠는가. 그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자동차는 날개가 없다. 이럴 땐 기다리는 게 유일한 해결책임을 이제는 안
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도로 사정은 운전자들에게 인내를 가르친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공사중인 구간을 벗어나서 조금 신나게 달
리다가 이번에는 비포장도로를 만났다.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지나느라 자동
차는 심하게 쿨럭거렸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우리들의 몸도 덩달아 출렁거
렸다. 속도를 낼 수도 없었거니와 엑셀레러이터를 밟는다고 해도 제대로 속
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욕심껏 가속 페달을 밟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
니다. 그런 길에서는 저속 기어로 변속을 하고 길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
다.
돌아오는 길에는 폭우를 만났다. 길은 미끄럽고 앞은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밤이었기 때문에 운전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집을 떠날 때의 홀
가분하고 여유있는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거의 기다시피해서 겨우 집
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을 길 위의 나그네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다. 태어
나서 죽는 순간까지 길을 걸어가는 존재가 사람이다. 우리는 어딘가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은 언제나 포장이 잘된 6차선
도로인 것만은 아니다. 인생이란 그렇게 단순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때로
우리는 (공사중)표지가 있는 좁은 길을 지나가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자갈길
을 지나기도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길을 지나야 할 때도 있고, 어두운 밤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길의" 상황에 알맞게 운전 속도를 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넓고 평탄한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조금 속도를 내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렇게 좋은 길만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좋은 길이 있었다면 나쁜 길(상화예도 나타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
람은 찰나의 기분에 취해서 마구잡이로 내달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분을
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또 공사를 하느라고 차가 막혀 있는 길을 만날 때는 여유를 가지고 브레이
크를 밟고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 무작정 내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속도를 줄이거나 때로 멈춰 서 있는 것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길 위에 있는 자는, 차가 막혀 서 있더라도 엔진을 정지시켜 버리
지는 않는다. 그래서는 안된다.차가 길 위에 있다는 것은 주차장에 있다는
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엔진을
끄지는 않는다. 언제 길이 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멈춰 있을 때도 길이
열리면 언제든 앞을 향해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자갈밭을 지나본 사람만이 포장도로의 고마움을 알고, 좁은 길의 이로움을
안다. 빗 속을 조심조심 기어본 사람이라야 쾌청하게 맑은 날이 얼마나 좋
은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들 길 위에서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장미빛만은 아니다. 때
로 바람불고 때로 눈비오고 때로 길이 막히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할 거은
그모든 상황의 길등이 우리의 길이라는 것이다.
우리들 앞에는 너무 많은 길들이 있다. 길은 길을 향해 열려 있다. 길 위
에 들어선자는 수많은 길과 만난다. 그래서 선택이 불가피해진다. 사람이
길위에 있는 나그네라는 것은 길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것과 그 뜻이 같다.
우리는 종종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어떤 일을 걸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그 질문은 왜 생겨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