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고신 95년 9월호 특집] '정직하게 사는 그리스도인'
2. 영적 위험으로서의 부
이상규 /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 교회는 부의 양면성에 대한 성경적 교훈을 균형있게 이해하지
못했고 물질적 축복을 축복의 결과로서 이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
었다. 한국 교회는 돈이나 재산, 부요 등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소
유의 청지기적, 재물의 물신적 성격 등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결핍
되었기 때문에 한국 교회 안에는 맘몬이즘이 창궐하였고 이는 샤머
니즘적 가치관과의 혼합 또는 공조 하에서 재물을 추구하는 상업주
의적 사고가 한국 교회에 팽배해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재물이 갖는 영적 위험성과 우상성에 대해
매우 심각한 주의를 요청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웃즈바
르트가 그의 "현대.우상.이데올로기" 에서 분명하게 지적하였던 것
처럼 물질적 부의 주구는 이기적 욕망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우상으로 화해버렸다.
부가 가져올 수 있는 영적 위험을 몇 가지 성경본문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선 부자 관원의 예
(마 19:15~30, 막 1O:17~31, 눅18 18~30) 를 살펴보자. 공관복음서
에서 똑같이 기록된 부자 청년관원에 관한 기록은 재물이 갖는 영
적 위험성뿐만 아니라 우상성의 성격을 잘 보여준 대표적인 경우이
다.
한 청년(관원) 이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
이까?"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다. 이 청년이
모든 계명은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누
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
를 좇으라' (눅19:22) 고 하셨다.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주장하는 이 청년에게서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 (막 1O:21, 죽 18:22) 을 보셨는데 그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부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재물이 많았던 이 청년에게 있어서 부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하셨
다. 여기서 재산을 버리라는 요구는 "나를 따르라" 는 요구와 "그
리고" 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다. 즉 소유의 포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종속되거나 관련되어야 하는 일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에 대한 신뢰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예수님께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했을 때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한 필수
적인 자발적 빈곤에의 요청인가? 즉 이 본문은 부한 사람이 그리스
도를 따르기 위해서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하시는 것인가
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는 자에게 "누구든
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
리라" (눅14:3) 고 말씀하셨다. 열두 사도들은이 말씀을 문자적으
로 따랐다고 볼수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부름을 받았을때 "그물을 버려두고" 그를 좇
았으며 (막 1:18) 다른 제자들도 이와 유사하게 소유를 버려두고
주를 따랐다. 베드로가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를
좇았나이다" (막 10:28)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은 모든 소유를 버
릴 것을 요구하셨는가? 또 재산의 포기는 영생의 조건이며,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보편적인 규정인가? 예수님의 교
훈과 신약적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이것은 결코 보편
적인 요구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 이면서
도 '예수의 제자' 로 기술되고 있다(마27:57) 부유한 세리였던 삭
개오는 "내 소유와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라고 했는
데, 이것은 불의한 재물과 부당한 징세를 돌려 주겠다는 약속이었
고, 나머지는 그대로 소유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고 선언하셨다 (마
27 57, 눅19:8~9)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그의 전 재산을 가난한 자
에게 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재물의 소유와 제자가 되는 일
은 양립할 수 없는 대립적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 청년을 향하여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
람들에게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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