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목회와 신학 1991년 6월호 특집
하나님 나라의 이해
하나님나라의 개념과 그 변천과정
신성종/대전중앙교회 담임목사
하나님나라의 개념은 역사만큼이나 복잡하다. 이것을 몇 마디 말
로 요약한다는 것은 세계사를 몇 마디로 요약하는 것만큼이나 어렵
다. 처음 이 문제가 대두된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초대교회
교인들의 당대에 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기 때
문이고 다음은 그렇다면 그 나라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였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초대교회와 하나님나라
첫째로 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제자들 당대에 임할 것인가가 문
제였다.그래서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주님에게 "언제 주의 나라가
임하겠습니까?"하고 질문하였다. 그런 제자들에게 주님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 라고 대답하시면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
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1992년에 주님
이 오시고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 된다는 허무맹랑한 말로 성도들
을 미혹케 하는 다미선교회 같은 이단들이 국내에만 20여개나 나타
나고 있다.
다음은 하나님나라의 성격에 대한 오해였다. 제자들까지도 그
나라를 지상에 이루어지는 메시야 왕국으로만 이해하였다. 다윗과
같은 메시야가 나타나서 로마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
계를 지배하는 그런 나라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누
가 크냐 하고 자리를 놓고, 서로 싸웠고 심지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로비활동까지 하였다. 또 가롯 유다는 그 목적이 불가능
해지자 주님을 배신하고 말았다. 이런 오해는 주님이 승천하는 순
간까지 계속되었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주님에게 이스라엘 나라
를 회복하심이 이 때나이까 하고 물은 것은 바로 이런 오해에서 온
것이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보면 초대교회의 이런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도 하지 않고 그 나라만 기다리면서 있는 사람들까
지 생겼다. 그래서 바울은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게하라"
고 가르쳤다.
다음으로 당대에 천국이 임하리라는 생각은 그들의 순교와 함께
점차적으로 시정되어갔다. 어쩌면 바울 자신도 당대에 하나님나라
가 임하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
았다고 해서 바울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
것이 하나님나라의 시간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날마다 '마라나
타' 신앙을 가지는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태도인 것이
다. 그래서 떤 이들은 누가복음 속에 천국연기설이 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자들의 해석의 관점일 뿐 주님
자신이 천국강림의 시간에 대한 혼란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슈바이처의 철저종말론
그 후에도 하나님나라의 개념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다
가 이것이 학문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 것이 종교사학파의 요하네스
바이스의 [하나님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 (1892) 였다. 이 책에
서 그는 리츨의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공격하였다. 리츨은 하나님나
라를 예수님에 의해 창설되고, 사랑이라는 윤리를 실천하는 종교적
인 공동체로 보았다. 이것을 요하네스는 공격하면서 묵시문학 안에
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나라는 순연히 미래 적이며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이 세상의 종말을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
다. 요하네스는 예수님 자신도 왕국이 자신의 죽음 전에 도래하리
라고 기대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윤리란 철저하게 종말
론적이며 예수님의 여러 가지 비유로 하니님나라를 제자들에게 가
르쳤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왕국은 지상에 이루어지는 메시아의
왕국으로 이해했다 이런 계명들을 낳은 것은 위기의식이었다고 하
였다.
그러나 이것을 가장 학문적으로 지지를 받은 것은 슈바이처의
철저종말론이다. 그의 1901 ~ 6년까지의 연구는 하나의 폭탄선언과
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좀 환상적인 묘사를
하였다. 그는 [메시야의 비밀], [라이마 루스에서 브레데까지],
[예수의 생애]란 책에서 철저종말론을 주장하였다. 그의 책은 학문
적이지만 그러나 역사적 객관성에 따르지 않고 주관적이며 신학적
편견에 많이 오염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
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생각한 예수님의 하나님나라를 윤리적으로
만 보아왔던 개념을 뒤집어 엎은 것은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선생인 흘쯔만은 자유주의의 거두였다. 그런데도 이것을
극복했다는 것은 큰 공헌이다.
위의 책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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