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역사 해석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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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해석과 신앙

1 역사 해석과 신앙 .....................................KIBT.001
I 역사적 실증주와 역사적 예수......................... .002
II. 역사적 관념주의의 주관화.......................... .003
III. 볼트만........................................... .004
IV. 틸리히........................................... .005
V. 바르트........................................... .006
VI. 결 론........................................... .007

김 기 흥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수. 역사신학)

오늘날 신학계에서 가장 곤란한 문제중의 하나는 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의 애매함이다. 예를 들어 예배도중에 사도신경이
고백될때 대개의 예배자 들이 자신의 신앙고백 내용을 믿건 안믿건 그
내용은 문자적으로 사실이다. 고백한 내용을 믿느냐고 질문하면
자신의 신앙대로 예, 아니오를 명백히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을 현대 신학자들에게 묻는다면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가 없다.

예수가 처녀몸에 잉태된 것이나 죽은 뒤 사흘 만에 다시 육체로
부활한 것을 믿는다고 고백을 해도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예수가 처녀몸에 잉태된 것이나 죽은뒤 사흘만에 다시 육체로
부활한 것을 믿는다고 고백은 해도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말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의미의 설명을 듣고 나도 여전히 "예'
인지 "아니오"인지 분명치가 않게 된다.

과거 어느때보다 현대 신학자들에게 고민 거리가 있다면 현대 과학
문명과 전통적인 신앙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정통
신학에서는 어떻게 하던지 신앙에서 출발해서 문화적인 문제를
다루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바른 지침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별로
불신앙자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다. 물론 그것이 신앙의
원리와 맡지 않으니까 당연하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
방법과 자연 과학적인 입장에 서서 신앙을 설명해 보려고 시도해 왔다.
즉 인간 모두가 귀납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토대로 해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서 있는
계시는 부정하는 결과를 빚고 만다. 결국 해석하는 사람은 자연
과학의 수준에만 해당 하는 해석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신학의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이제부터 어떻게 교회사관이 세속사관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그
결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일들이 철저히 왜곡되어
해석되었는지 밝히려고 한다. 세속사의 입장은 물론 계몽주의 부터 그
뿌리를 볼 수 있으나 그 시대는 불완전한 과거보다는 발전한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조에 의해 역사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 소위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의해서 역사 방법은 새 시대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 후 한세기 동안
변천해 내려온 것을 보면 그것이 대단히 비과학작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개연성(probability)만이 방향성을 인도 한다. 쉬운 말로 말하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야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 신학자들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편상시에도 일어날 수 있는
내용으로 수정 해야 한다. 이러한 수정의 과정을 통해서 전통적인
용어를 가지고 있지만 내용상 전혀 전통적이지 않은 기독교로 바뀌어
버린다. 이러한 수정은 계몽주의 이후로 긴긴 과정을 통해 왔다. 그
과정을 통해서 언제난 나타나는 공통점은 성경 곧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을 부정해 버리고 해석자의 주관적인 전제로 재해석 설명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진리이다. 이러한 진리의 주관화는 지금도
계속되어서 본래는 단순 명료한 계시의 의미를 혼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주의 이후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역사가들이나
신학자들 모두 에게 곤란한 문제 였다.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마샬은 세 종류의
해답을 제시한다. 먼저 어떤 이들은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일어나ㅏㄹ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성경에 쓰인 기사들 역시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사실이 아니다. 둘째로 어떤 이들은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가능성을 신앙으로 받아 들일 수는 있으나
역사에는 사용할 수 없ㄷ고 한다. 왜냐하면 초자연적인 증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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