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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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틸 리 히

틸리히는 자신의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애매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그는 기독 교의 신앙이 나사렛 예수의 실제 삶과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고 주장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앙의 개념은 아무런
객관적인 지식 위에 세워져 있지 않고 역사적 인물 예수와 관련도
없다. 틸리히는 오로지 "역사의 실존적인 의미 관심이 있다. 보편
역사 (Historie)가 아닌 초 역사에(Geschichte)" (The Futu re of
Religions,P.33). 그에 의하면 "신앙은 궁극적 관심으로 갖는
상태이다." 신앙은 생의 궁극적인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궁극적인
관심이 경험될 때마다 거기에는 신성이 존재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의심까지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 키지 못한다.
이 궁극적인 관심이 우리의 실존적인 "존재 또는 비존재"를 결정 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한정적인 좋은 것 그 무엇과도 구분되는 것이다.
궁극적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상 숭배이다. 그리스도
그 결과 는 "실존적 절망"을 뿐이다.

틸리히가 보기에 신앙은 어떤 진리 또는 교리에 의식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 니다. "우리는 바른 사고의 방법이나 지성의 희생이나 교회나
성경의 교리같은 괴상한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도달할 수는
없다."(ST,1:14).이런 것들 은 주변적인 것이지 궁극적인 관심은
아니다. 그렇다면 궁극적 관심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이렇게
묻는 것은 오히려 궁극적인 문제를 떠난 것인지도 모 르겠다.
여하간에 대답은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는 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에 대답은 분명치 않다. 어째든 그는 "사람은 직접 개인적이고
중심적인 행동 속에서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 게 된다."(The Protestant Era,xv)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계시는 신앙 또는 궁극적 관심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자신이 쓴 (존재의 용기)란 책에서 틸리히는 현대인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전통 적인 기독교의 신념과 상징을 옹호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가장 고상한 상태의 용기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본주의를 초월한 것이어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신앙의 용기이다.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금 아무것도 확실한
하여금 아무것도 확실한 것을 못 봐도 운명의 변화와 죽음 의 공포를
견딜 수 있게 하다"(Courage to Be,P.189). 이것은 또한 "아무도 또는
아무것도 자신을 받아줌이 없어도 받아들여졌음을 받아들이고 또한
용기를 주는 존재 그 자체의 힘이다 (Ibid.,P.185). 그러므로
틸리히에게는 "절대적 신앙"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아무 또는 객관적인
계시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역사에 대한 실존적인 견해는 그로
하여금 신앙의 토대로서 아무런 객관적인 지식도 받아들이지 않게
만든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용의 신빙성이 아니라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의 입장에서 보는 사람들의 "의미"였다. 역사 연구는

그들의 구약과 신약의 성서적 이야기들의 부분이 역사적,
전설적,신화적 요소 들로 뒤섞여서 개연성의 정도에 따라 이 요소들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성경의 이야기들의
역사적인 신빙성에 대한 확신을 신앙과 동 일시하는 것은 무서운
왜곡이다. (Dynamics of Faith,P.87).

틸리히에 의하면 신앙은 "전설적 자료와 역사적 자료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 활에 관한 설화에 혼합되어 있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신앙은 "존재와 의미의 궁극적인 문제가 관련되었기에 궁극적
관심의 무엇이 역사에 일어났다는 것을" 포함한 성경 기사는 그
가운데서 사실을 집어내기가 불가능한 초대 교회 의 신앙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고로 성경의 내용은 절대로 객 관적인
신앙의 지식에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자신의 신앙에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아무런 객관적인 지식이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신앙을 위해서 필요한것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 이라고 한다면 이것 역시 잘못
이해된 것이다. 하나님까지도 여러 대상 중에 하나로서 한계있는
관심이 될 수 있다
그의 존 재에 관해서 어떤 사람들은 믿고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물론 그런 하나님 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다. (New Being.P.159).

그는 계속해서 "단 하나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무한히 궁극적
관심을 갖는 것이다"고 선언하다. 이 말은 또 무슨 뜻인가? 그는
"그러한 궁극적 관심의 힘 과 열정에서"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한다
(Ibid.). 신앙의 대상이 없는 순수한 인간의 관심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비가 말한대로 틸리히는 신앙을 교리 또는 역사적 신앙보다는 자기
의인화의 모든 시도를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