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왕의 이야기는 다윗의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이 ?왕은 성경이 악한 왕이라고 지목하는 왕들 가운데 하나로 실로 '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한 자"이었다. 아합은 이방 ?왕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이방의 공주는 언제나 아합에게 악의 근거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결혼해 올 때 다만 혼자온 것이 아니고 그녀의 ?나라가 섬기는 이방신. 곧 바알 신과 그에 따른 제사장 및 예언자들을 ?대동하고 시집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합은 왕후 마마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바알신을 경배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합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언자를 통하여 ?여호와가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때로는 에언자들과 ?상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이세벨의 손아귀에 붙들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세벨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왔다가도 홀연히 가버리고, 또 찾을 때면 종적을 ?감추어 버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외적 자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내적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유의 힘이 그로 하여금 ?언제나 아합왕께 나아가서 진언하게 하였는데 이 일이 아합에게는 두려움이 ?되고 왕후 이세벨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엘리야는 오랫동안 한발이 있으리라고 선언하였다. "바알신"은 본래 ?농업의 신이었다. 이세벨의 제사장들은 "풍우"를 지배하는 신이 바알이라고 ?하는 것을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하였다. 엘리야와 바알의 제사장들 ?사이에는 "누가 비를 오게 할 수 있는지를" 보이는 심한 경쟁이 생겼었다. ?이로 인하여 왕은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피신시키고 돌보셨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만이 비를 오게도, 못 오게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으리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비극적 정황이 그대로 응하여 ?졌었다.(18장) 그 다음에야 엘리야는 다시 등장하게 되고 바알신의 제사장
들을 쳐서 죽인 후에 비를 오게 하였다.
엘리야가 바알신의 제사장들을 죽이자 이세벨의 진노는 대단하였다. ?엘리야는 또다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쳤다. 그는 한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죽기를 원하여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기원하였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힘을 얻어 ?"계시의 산"이라 할 수 있는 호렙산으로 인도하였다(왕상19:8에는 '시내산'
임). 하나님은 거기서 그에게 폭풍이나 불꽃 가운데서가 아닌 "극히 작은 ?소리" 가운데서 나타나셨다. 열왕기상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지나
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여호와께서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가운데 ?도 계시지 아니하시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 지라"(19:11-12)고 ?하였다. 바알신의 예언자들을 금방 400명이나 죽인 잔인 무도한 사람에게 ?계시가 있다니 그게 무슨 계시일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교훈을 주시는 ?것이었다. "너만이 홀로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유일한 선지자라고 과신하지 ?말지니라. 너 이외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들이 7000명이나 ?있느니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왕상 21장).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바물밭을 만들고 욕심을 내었다. 왕은 나봇에게 그 포도원이 ?궁전 근처에 있다는 점과 돈을 주고 사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나봇에게 거절
당한 것이다. 나봇은 자유인이었고 또 이 포도원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유전받은 것이므로 그것을 팔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조상의 유전물은 거룩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얼마 안되는 ?땅일지라도 한 세대로부터 또 다른 세대로 유전해 내려온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나라의 일부라고 생각하였다.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갔다(그는 종종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참고 20:43). 근심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욕심과 변덕성의 노예가 된 자의 특색이다. 그러한 사람은 노예이지 ?결코 자유인일 수가 없다.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는 ?것이다.
그러한 때에 또 다시 그의 "악마"라고 볼 수 있는 이세벨에게 붙들린다. ?이렇게 해서 나봇을 죽이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외견상 살인자는 ?이세벨의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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