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된 영혼은 신선하며, 또 거기에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구체적으로 깃들어 있다. 왜? 감동을 받은 영혼이란 결코 각자의 임의대로 ?무엇을 날조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되어지는 분위기에
만 가능한 것이다. 아름다운 이슬만을 먹고 자라 온 사슴처럼 깨끗한 ?사랑의 이야기에 감동된 젊은 연인들은 그 이야기를 누가 임의로 조작하였
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발전된, 찾아진 사랑으로 느끼고 공감한다. ?이럴 때 감동된 영혼은 인위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멀음을 우리는 인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감동된 영혼은 신선하며 신선한 영혼은 본질적으로 자기 ?세계 속에 갇혀 있지 않고 감동을 주는 세계에로 열려져 있다. 감동된 ?영혼은 한 마디로 열린 영혼이다. 그러면 어떻게 열린 영혼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꽃필 수 있는가? 잠시 여기에서 부연하고자 하는 것은, 갇힌 ?영혼은 곧 썩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갇힌 영혼은 결코 감동의 동적 활력이 ?주는 창조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태감. 바로 그것이다. 권태감은 자기 ?파괴를 조장하고 자기의 존엄성을 스스로 짓밟게 된다. 하옇든, 열린 ?영혼은 마치 교향곡이 주는 신비와 같다. 우리 모두 베에토벤의 제 9교향곡 ?이 주는 음악적 감동이 무엇인가를 상상하여 보자.
저 불멸의 악성이 남긴 제 9교향악은 우리 각자가 버리기 어려운 자존심과 ?이기적 요구로 뒤범벅이 되어 응결된 언쟁과 싸움의 영역을 초월하여 높은 ?차원의 새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교향악 속에서 각 악기들은 자기들의 자존심과 고집스런 자기 주장을 ?버리고 한 영웅의 보이지 않은 정신 아래서 차원 높은 협화음을 창조한다.
여기서 우리의 정신은 2인칭으로서의 '너'의 발견과 더불어 나와 함께 공존
하는 구체적 '우리'의 세계를 의식하게 된다.
'환희의 송가' 속에 울려 퍼지는 베에토벤의 영혼과 정신은 바로 ?형제애라고 이해돼야 할 것이다. 형제애를 느끼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이웃 속에 산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영혼은 이웃이 자기를 ?구속하는 귀찮은 속박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자유를 구현시켜 주는 해방
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짙은 농도로 우리 자신의 ?포로가 되어 가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과 감정, 편견의 노예로 전략하여 ?자신들의 문제에만 집착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애에 젖은 ?사람은 자기 형제가 풍성해지기에 그만큼 자신도 풍요해지는 기쁨을 맛보는 ?그런 형식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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