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비평]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주일설교
본문 : 요 3:1-15
제목 : 만남과 변화
“또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최후의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다 이루었다"하며 죽으시고 삼일 동안에 사망과 음부의 세력을 멸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의 절망과 음부와 죽음이 철폐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영생과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음부에 가서 영원히 불탈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는 이 `만남과 변화`라는 설교에서 “음부”에 대한 비성경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신약 시대의 죄인들이 “음부”에 가서 영원히 불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했지만, 이러한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인 이 시대에는 적절치가 않다.
“구약과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기점으로 구분된다(마 26:28; 27:50). 이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건이었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님 승천 이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지하세계”(Underworld)로 내려갔다. 누가복음 16장은 의인이 가는 ‘낙원’(아브라함의 품)과 죄인이 가는 ‘지옥’으로 그 세계를 구분지어 제시하는데, 이 둘은 모두 땅의 아랫부분에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베소서 4:8-10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낙원에 있던 구약성도들을 셋째 하늘로 데려가셨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갔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들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낙원은 땅 속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으며, 이 하늘에 있는 낙원을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갔을 때 보게 되었다. 『내가 십사 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을 알았는데...그 사람이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느니라...그가 낙원으로 끌려올라 가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것이로다』(고후 12:2,4). 그래서 예수님 승천 이후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죽으면 지하의 낙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낙원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은 여전히 땅의 더 낮은 부분에 있는 지옥으로 가게 된다.
“음부”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승천 이전인 구약에서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했다. 음부는 낙원과 지옥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죽으면 가는 곳을 통칭할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는 이 음부에 낙원이 사라졌으므로, 더 이상 ‘음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지옥”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물론 번역 차원에서는 비록 신약성경이라도 ‘음부’라고 해야 할 곳이 있지만(고전 15:55), 조용기 목사처럼 죄인이 불타며 형벌 받는 곳을 지칭하고자 할 때는 ‘음부’를 쓰는 대신 “지옥”을 사용해야 옳은 것이다.
죄인들에게 ‘음부’가 무서운지 “지옥”이 무서운지 한 번 물어보도록 하라. 당연히 그들은 “지옥”을 더 무서워한다. 그러나 강단에 선 설교자가 이 “무시무시한” 지옥 대신 음부라는 어중간한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는 지옥의 끔직한 형벌에 대한 이미지를 없애는 일을 한 것이다. 죄에 대한 형벌이 사라지고 사랑의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볼 때, 지옥을 음부라고 표현한 조용기 목사는 그의 무지로 인해 오늘날의 배교를 한껏 ‘돋보이게’ 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가 이런 기본적인 신학도 모르고 있으니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006년01월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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