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하나님의 나팔
목사는 하나님의 나팔이다. 나팔수가 아니라 나팔이다. 나팔은 스스로 아무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나팔수가 불기 전에는 전혀 소리를 낼 수 없는 악기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부는 대로 소리를 낼 뿐 자신이 스스로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연주하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소리를 낼 뿐 나팔 스스로의 의지나 감정이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 적은 수가 듣든,많은 수가 듣든 나팔 자신과는 상관도 없다. 많은 수가 들었다고 기분 좋을 필요도 없고 적은 수가 들었다고 기분 나쁠 필요도 없다. 나팔이 언제 감정 표현하는 것 보았는가? 나팔수가 연주하는 대로 녹슬지 않은 분명한 소리를 내기만 하면 된다. 나팔수가 부는 그곳에서 나팔수가 부는 그 때에 나팔수가 원하는 그 소리를 내면 그만이다. 정확한 때에 정확한 곳에서 분명한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팔 자신은 듣는 이의 반응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청중이 기뻐하든,슬퍼하든 나팔이 속상할 필요가 없다. 나팔 스스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내면 나팔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문제는 목사들이 나팔이 아니라 나팔수인 양 스스로 소리를 내는 데 있다.
듣는 이들의 수나 반응에 너무 민감한 태도를 취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청중의 반응에 기뻐하고 청중의 반응에 속상해 하며 듣는 수가 많고 적음에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어쩌면 그렇게도 숨김없이 드러내는지.
소위 대형 교회 목사들,그들의 어깨와 목소리에는 얼마나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지. 성도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교회의 목사들,그들의 어깨는 왜 그렇게 처져 있으며 열등감과 자괴감에 젖어 있는지.
보기에 심히 민망스럽고 딱하고 안타까움이 배로 넘친다. 자신의 사명의식과 자존감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의 나팔로 쓰임 받음이 존귀하고 복된 일이거늘….
세례(침례) 요한을 보라. 그는 자신을 가리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외치는 자가 아님은 물론이고 ‘말’이 아니라 ‘소리’라고 표현하였다. 말이란 말하는 자의 의지와 인격 그리고 감정이 들어간다. 그러나 소리는 소리를 내는 자의 인격과 의도와 정서를 표현할 뿐 소리를 내는 도구의 감정이나 정서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예수님은 요한을 가리켜 “여인이 나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목사는 하나님의 나팔이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 14:8)
고명진(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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