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소리 그것은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들립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많은 가장 위대한 능력 그것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좋은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오늘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훈련입니다. 그것도 진리를 찾는 훈련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훈련이고 ?신령한 것을 찾는 훈련입니다.
인생의 불안과 절망의 해독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까?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은혜만 있으면 참을 수 없는 것 참을 ?수 있고 이길 수 없는 것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의 역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사실 눈을 뜨고 자세히 보면 이 사회는 한 개인이 설 수 있는 땅은 ?마련해 주지만, 그 땅에 버틸 수 있는 힘까지 제공해 주지는 않습니다.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여호와의 신으로 생명마다 권능의 채움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외적인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삶의 자세요 태도 입니다. 생의 ?역경은 다른 행복을 위한 디딤돌이며 삶의 고통은 기쁨을 낳기 위한 ?산고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결코 슬픈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인생을 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러나 지금 믿음을 붙들려는 사람 또 믿음을 붙들고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들에게 끝없이 일어나는 삶의 질문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인간을 ?징계하실까?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실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사랑은 한 생명을 향한 그 훈련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랑의 하나님이 그 자녀를 훈련할 때에 때로는 ?전혀 이해하기 어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이 소란한 세상에서 때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훈련을 꼭 참고 붙들고 나가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신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숨겨진 훈련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린애를 낳아서 그 애가 하는대로 놔두면 무엇이 되겠어요? 부모가 ?그 생명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 어린 생명이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훈련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운동선수는 뙤약볕에 뛰기 싫고 훈련받기 싫어 하나 코취는 그 ?국민하교 4,5학년의 어린것들에게도 무서운 훈련을 시킵니다. 그 훈련의 양 ?속에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코취는 ?그 훈련의 장래를 보고 있지만 선수는 지금의 고통만 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도 매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명에게 일어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지만 우리 미련한 인간들은 지금 내게 나타난 고통만 보고 ?있습니다.
순수한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핵심의 ?내용은 훈련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 64:8)
우리는 진흙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신데 진흙이 토기장이의 마음을 ?어떻게 압니까? 어린자식이 사랑으로 훈련하고 징계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길이 없는 것처럼, 우리 미련하고 연약하고 우둔한 인간은 때로 하나님의 ?징계와 사랑과 훈련의 매를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권면은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사랑의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 징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서 지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훈련, 하나님의 징계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혼란과 혼돈의 훈련
우리 인간은 늘 안전한 것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늘 현상 유지에서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늘 활동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풍요와 위로만이 꼭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결코 분발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안정과 풍요만을 즐기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큰 역사를 위해 계속 분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기 원합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이 명령은 삶에 ?대단한 혼란입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풍요와 안정의 고향땅을 떠나라고 ?하실까?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믿는 자에게 계속되는 일입니다.
그 뿐입니까? 천신만고 끝에 100세에 아들을 하나 주시더니 <아브라함아! ?이제는 그 아들을 나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대단한 혼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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