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강해3-1) 사단의 유혹

  조회수 : 474    / 등록일 :    / 출처(저자) : 욥 3:1-19



주제: 욥기 위로자 정죄
제 목 : (욥기강해) 2-2.밤의 위로자
(욥기 2:11-13// 찬송 363장)

** 1995/01/29(주) 04:30 ** 홍만조 목사(대전 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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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 벵겔은 "욥기의 경우야말로 훌륭한 위로자가 어떻게 정
죄하는 위로자로 변신할 수 있는가의 가장 고전적인 모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간혹 고난과 역경과 어두움에 처할 때, 가장 훌륭한 위로자로
출발했던 사랑하는 친구들이 오히려 우리를 정죄하고 짓밟는 사람으로 변질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도히는지를 그 적합한 한 예를 욥
의 세 친구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 세 친구들의 모습이 잘못 부각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좋게 출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위로자의 모습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욥의 세 친구들이 "고난받는 형편에 처해 있는 이웃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라는 위로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1.그들은 욥과 함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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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
람<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의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욥2:11). 욥의 친구들은 욥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침묵
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괴로워하는 고난의 현장까지 달려왔
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이웃들이, 그리고 형제들
이있다' 이것이 위로자에 대한 첫번째 물음입니다.
주인은 선한 사라미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이웃을 돕는 방법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필요한 이웃들을 피하고 그대로 지나가고 있지
는 않습니까? 위로란 중대한 필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내 자신을 파
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가 꼭 필요로 했던 어떤 문제를 해결시켜 주는 것
만이 위로가 아닙니다. 위로는 함께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진실로 위로
가 필요한 이웃과 형제들의 고난의 현장으로 찾아가 그들과 함께 있어 줄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장 큰 위로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위로자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
은 고난받는 사람들의 삶 한복판에 서 계셨습니다. 이웃들의 한복판에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함께 해 주는 것, 이것이 위로의
첫번째 발걸음입니다.

2. 그들은 욥과 함께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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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 인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
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욥2:12).
고난은 항상 인자한 미소와 믿음으로 향기로운 얼굴 모습까지 변화시켰습
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참혹한 친구의 모습을 보자마자 친구들은
놀라움의 소리를 지렀습니다. 이것은 동정의 몸짓이 아니라 친구의 고난과
아픔을 목격한 세 친구의 솔직한 공감의 모습이었습니다.
위로란 <함께 느끼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영역 가운데
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感情입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당해도 감정과
감정이 통하지 않을 때 인간 관계의 진정한 교류는 불가능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으로 상
대방을 설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을 해쳐버리면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막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 훈련 모임이 있을 때 "여러분, 전도할 때 말싸움이
나 이론에 있어서는 지십시오. 그리고 대신 영혼을 얻으십시오" 라고 권면
합니다.
우리는 논리에 의한 설득과 승리를 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영혼을 찾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감정이 상해 보십시오. 그 다음의 말은 전혀 들려지지 않
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앙심을 품을지 모릅니다. '두고 봐라 내
가 믿는가. 절대로 안 믿는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바로 감정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진정한 위로의
대상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
을 <共感>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感情移入>(empathy)이라는 단어를 발견해 냈습니다. 그것
은 감정과 감정이 상통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면에서 누구
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