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예식의 설교의 예
제목 :새로운 피조물
본문 /고후 5:11~19
출처 : 월간 그말씀 93.3 특집
예식설교 - 세례식 설교
예수님은 30세까지는 고향에서 가족을 돌보며 목수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30세의 어느날 불현듯 일어나 하나님나라를 위한 하
나님의 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가지 양태의 삶을 사생애와 공생
애라고 부르지요. 전혀 다른 목적과 내용의 삶, 이 삶의 전환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
이 합당하니라"( 마3:15 ).
세례 !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죄가 없으
시기에 씻으실 것도 죽어야 될 죄의 몸도 아니시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그대로 담당하시려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 세례가 사생애와 공생애,
삶의 목적과 의미가 다른, 세상에 집중하던 시선을 온통 하나님께만 모으
는 삶으로의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 삶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
입니다. 더구나 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그리스도를
닮기 원한다면, 이세례는 그에게 있어서 그의 사생애를 끝내고 그의 공생
애를 사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17절의 대선언을 중심으로 두부분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이 지나가는 이야기와 이제 새
로운 삶이 벅차게 펼쳐지는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새로운 피조물 ! 이것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 죽음 후에 다시 흠 없고 죄없으
신 주님과 연합하여 전혀 다른 신분으로 일어나는 거듭난 심령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본문의 앞부분인 1~10절을 보면,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짐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져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입혀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옷을 훌훌 벗어버리
고 새 옷을 입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세례받는 순간부터 말씨도 고상
해지고 행동도 거룩해지고, 가장 솔직하고 진부하게 말해서 술도 끊고 담
배도 집어던져야 한다면 좋기는 좋겠으나, 아마 각 교회마다 서너명이 모
여 앉아 공동 의회를 하고 성찬식 포도주는 콜라 반병 정도만 준비하면
되는 사태가 오겠 지요
아닙니다. 그런 급격한 변화는 아닙니다. 분명히 변하기는 변하되 마
음의 휘장이 찢어지는 소리는 그렇게 요란하고 딱 부러지는 것만은 아닙
니다.
그래서 성경은 `덧입는다'는 말과,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로 발견되
지 않으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키
워버리는 덧입음, "옛 것은 그대로 두어라. 그것을 완전히 제거 하기 위
해 너희 그 귀한 삶을 낭비하지 말라. 그리고 그런 네 시도는 결코 성공
할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
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이 말씀처럼
아직 옛 습관이그대로 있는 그 위에 생명의 성령의 옷이 입혀지는 것입니
다. 이 그림을 주의 성령의 물이머리에 부어질 때, 우리모두는 그릴수 있
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옷을 입는 순간, 옛 장막 집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
다. 이것이 회개이지요. 회개가 먼저인지 생명의 옷을 입는 것이 먼저인
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둘은 거의 동시에 연관되어서 일어납니다. 사도
행전 2장 .l8 절의 베드로의 그 외침 `회개하여 각각 예수의 이름으로 세
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에서, '회개'와 `세례받음'은 거의 동시에 일
어나는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11절의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남'은 회개한 심령만이 가지
는 영적 홀가분함이요, 이 자유의 마음 밭에 주의 성령과 은혜가 그 사랑
이 물밀듯 밀려드는것이죠
이제부터 진실이, 중심이 말하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하는 모든 자들의 위선은 절대 통하지 않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 그것이 세례받은 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8~21절을 보면 스스로 교만하여 자신의 경력을 외적
조건을,사도에게 인정받았다 아니다, 신앙 경력이 얼마다 아니다 등등의
이야기로 자신을 포장하고, 남들을 내리누르는 자들에게 주는 성령의 일
들이 나오는데,`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
라" 입니다.
그래요. 새로운 심령이 참여하는 공동체는 위선과 외적 자랑이 무너
지는 곳이며, 중심과 능력이 만지듯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강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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